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남수

金南洙

1900. 5. 18 ~ 1971. 12. 2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남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금릉(金陵)문화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금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5월 18일 경상북도 금릉군 아포면(牙浦面) 제석리(帝錫里, 현재 김천시 아포면 제석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음)8월 중순경 김천군 아포면 인리(仁里)에 소재한 음식점인 백남태(白南台)의 집에서, 예수교학교 교사인 김교훈(金敎勳)과 구미·선산 지역을 중심으로 3·1 만세 운동의 확대를 계획하고 독립운동 자금의 모집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이후 자신의 재당숙 김성숙으로부터 1,400원의 거금을 얻어 김교훈에게 제공하였다. 같은 해 (음)9월 동지 김교훈, 최상문(崔相文) 등과 아포면 제석리 김용호(金龍鎬)의 집에서 모여서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하였다. 이때 독립운동 관련 기사가 실린 지하신문 『혁신신보(革新申報)』와 『신한별보(新韓別報)』를 동지 엄용호(嚴龍鎬)로부터 입수하여, 그 기사를 발췌한 후 이를 등사하여 인근 지역에 배포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독립 사상을 고취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김교훈이 인쇄를 담당하고 그 비용은 동지로부터 갹출하기로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48원을 제공하였다. 또한 『신한별보』를 휴대하고 김천군 개령면(開寧面) 동부리(東部里)에 있는 배점석(裵點石)에게 가서, 그 신문을 보여 주고 독립운동에 가담할 것을 권유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으로 50원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동지 획득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2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32년 2월에는 만주에서 수해를 입은 재만 동포를 위한 의연금 50전을 동아일보사에 기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