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환
張敬煥1871. 6. 26 ~ 1942. 3.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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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71년 6월 26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송전리(松田里, 현 당진군 대호지면 송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 현 당진시 정미면) 천의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서울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은 서산군에도 전달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구장의 통지를 받고 4월 4일 아침 대호지면사무소로 갔다. 6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면장 이인정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지금부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를 할 것이니 참여해 달라고 연설하였다. 이를 듣고 공감해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시위대에 동참해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정미면 천의리로 가는 동안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며 시위대에 동참하였고, 이들과 함께 천의장터로 이동하였다. 천의장터에 도착한 후 시위대와 함께 정미면사무소와 천의경찰관주재소 등을 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주재소를 습격해 파괴한 후 해산하였다. 이후 홍성헌병수비대의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색출 과정에서 붙잡혀 서산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19년 4월 26일 서산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확인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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