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업
張景業186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1919년 곡산군 화촌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화촌면(花村面) 운암리(雲岩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나이가 52세이므로 1868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4일 곡산군 화촌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저녁 천도교 중앙총부 『천도교회 월보(天道敎會 月報)』 과장(月報課長) 이종일(李鍾一)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이경섭(李景燮)은 3월 3일 곡산군으로 가서 이재경(李載景)에게 이를 전달하였다. 그러면서 곡산군 일대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도록 제안하였다. 이재경과 이경섭은 곡산군 일대에서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3월 3일 수안군(遂安郡) 수안면(遂安面)에 거주하는 홍석정(洪錫禎)도 곡산면 송항리(松項里)에 위치한 천도교구 전도실로 찾아와, 김희룡(金希龍)에게 선언서를 전달하면서 곡산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김희룡은 이문일(李文鎰)·조영섭(曺永涉)·문창환(文昌煥)·김창현(金昌玄) 등을 규합하고, 3월 4일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3일 화촌면 광천리(廣川里)에 거주하는 천도교인 김두환(金斗煥)은 화촌면 도리리(桃李里)에 위치한 천도교 교리강습소 강사 김창렬(金昌烈)의 집을 방문하였다. 김두환은 김창렬에게 선언서를 전달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배포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화촌면 운암리(雲岩里)로 간 김창렬은 이달하(李達河)를 비롯한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이때 모임에 참여해 만세시위 집회 장소를 김두환의 집 앞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3월 4일 화촌면 주민 20여 명을 인솔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한편, 3월 4일 오전 10시경 곡산면 읍내에서 이재경·이문일·이경섭 등이 조선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김희룡이 깃발을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자, 읍내에 모인 주민들도 이에 호응해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은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재경과 김인갑(金寅甲) 등을 붙잡았고, 곡산면 만세시위에 동참하려던 문양리(文陽里)와 금성리(錦城里)의 천도교인들을 제지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