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熺洙
熺洙1887. 10. 5 ~ 1933. 1.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연기군 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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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7년 10월 5일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남면(南面) 송담리(松潭里, 현 세종시 한솔동 및 연기면 세종리)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 한 임희수(林嬉洙·林喜洙)이다. 1919년 4월 1일 남면 송담리에서 전개된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연기군의 각 지역에서 횃불만세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다시 횃불만세운동이 여러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31일 보통리(洑通里)에서는 박원칠(朴元七)의 주도로 밤 8시경 약 10명이 뒷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방축리(方丑里)에서는 임헌상(林憲祥)의 주도로 밤 8시경 약 30명이 황우산(黃牛山)에서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또한 양화리의 조의순(趙義淳)·임덕문(林德文)·이덕민(李德敏), 진의리(眞儀里)의 김봉식(金鳳植), 월산리(月山里)의 임영복(林永福) 등은 마을 주민 100여 명과 함께 아월산(雅月山)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는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시위대를 지휘해 진의리·송담리 등 남면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대한독립만세로 외쳤다. 이때 송담리에서는 이미 주민들이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이들과 합류하였다. 4월 1일 같은 마을의 임숙명(林淑明)·임만수(林萬洙)와 함께 밤에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즉시 주민들의 규합에 나서며 전날에 이어 만세시위에 나설 것을 호소하였고, 이에 공감하여 30여 명의 주민들이 동참하기로 결의하였다. 임숙명·임만수와 함께 이들을 지휘해 마을 인근의 서운산(瑞雲山) 정상으로 올라갔고, 밤 9시 경부터 약 1시간 동안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만세시위 참여자들의 색출을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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