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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在虎

在虎

1898. 9. 14 ~ 196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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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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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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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의성군 비안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9월 14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 동부리(東部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3일과 16일에 비안면 동부동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의성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후속 만세시위를 준비하고자 동부동과 서부동(西部洞)의 김석근(金碩根)·박후도(朴後度)·박홍섭(朴洪燮) 등 애국청년들과 함께 김석근의 집에 모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세운동에 호응하여 ‘우리 고장에서도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널리 알리는 의거를 단행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들은 이에 의기투합하여 곧바로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120장을 제작하였다. 3월 13일 밤 8시 무렵 이들은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를 가지고 서부동 장터로 가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세운동의 경과와 운동의 취지를 주민들에게 설명하면서 휴대한 태극기를 나누어주었다. 이후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주도하였다. 때마침 1백여 명의 군중 또한 동부동에서 서부동 시장을 향해 ‘독립만세’를 연호하며 시위 행진을 진행하고 있었다. 곧이어 이들 시위 대열은 서부동 시장에서 하나의 시위 대열을 형성한 후 더욱 열렬하게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누비면서 밤늦도록 독립의 의기를 표출하였다. 이후 일제 군경이 출동하여 주도자 중 한명인 김석근이 붙잡히면서 시위대는 자연스레 해산되었다. 일제의 검속을 피해 은신한 상황에서 박후도·박홍석 등의 동지들과 상의하여 재차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약정하고 거사준비를 서둘렀다. 이들과 함께 3월 16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시장에서 군중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정하였다. 3월 16일 오후 3시 무렵 시장에 모인 50여 명의 군중에게 준비한 태극기를 배포하며 ‘독립만세’를 앞장서서 외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9일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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