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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龍根

根

1894. 10. 15 ~ 1963.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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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龍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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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陰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음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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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1919년 음성군 맹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94년 10월 15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맹동면(孟洞面) 마산리(麻山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3일 음성군 맹동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맹동면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0일부터 시작되어 4월 4일경까지 지속되었다. 3월 20일 이 지역에서 천도교도로 활동하던 김동환(金東煥)은 천도교 조직을 통해 전달받은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등사하여 면내 각 지역의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그 후 나라의 독립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동참을 결의한 수백 명의 주민들을 규합하여 마을 인근의 산 위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는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맹동면 최초의 만세시위였다. 그러나 이후 4월이 되기까지 맹동면에서는 별다른 만세시위가 전개되지 않았다. 맹동면에서의 만세운동은 4월에 들어 다시 시작되었는데, 4월 3일 만세시위가 절정이었다. 면 소재지인 쌍정리(雙呈里)에서는 4월 2일 약 1,000명의 주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곳곳을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면소재지에서 대규모 만세시위를 경험한 일제 경찰은 다음 날인 4월 3일 면사무소 습격계획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쌍정리를 중심으로 맹동면의 주요 지역에 삼엄한 경계망을 펼치기 시작하였으나, 계속되는 만세시위를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다. 앞서 김동환이 면내 각 지역에 배포한 독립선언서와 맹동면 최초의 만세시위로부터 크게 영향 받아, 같은 마을에 거주하면서 평소 교류가 있었던 강혜수(姜蕙秀)·강대길(姜大吉)·강구원(姜龜遠) 등과 함께 마산리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4월 3일 이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의 내용을 알리고, 만세시위를 제안하였다.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주민들을 규합하여 동리의 뒷산인 와우형산(臥牛形山)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일제히 큰 목소리로 연창하는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직후 마산리의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강혜수·강대길·강구원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점이 인정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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