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호
任文鎬1877. 2. 7 ~ 1930. 3.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보령군 주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77년 2월 7일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주산면(珠山面) 금암리(金岩里)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에는 주야리(珠野里)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7일 보령군 주산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보령군 주산면에서는 증산리(甑山里) 출신으로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培栽高等普通學校) 학생인 이종연(李鍾淵)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종연은 1919년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고향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계획하고 3월 중순경 독립선언서를 숨겨 가지고 귀향하였다. 이종연은 유림 등 만세시위에 참여할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다. 이종연에게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들은 후 주산면에서의 만세시위 제안을 받고, 박윤화(朴奫和)·박태현(朴台鉉)·이철규(李哲圭) 등과 함께 크게 공감해 동지로 결합하였다. 그리고 주산면 장터의 장날인 4월 16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으나, 이러한 사실이 사전에 일제 경찰에게 탐지되어 4월 17일 밤 증산리에 위치한 주렴산(珠簾山) 국수봉에서 횃불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4월 17일 밤 이종연·박윤화·이철규·이장규 등과 함께 주렴산 국수봉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한복판에 태극기를 세웠다. 이어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징을 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인근 주민들이 만세 구호와 징소리를 듣고 국수봉으로 모여들었고,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확대된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웅천(熊川) 읍내를 향해 행진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이 시위대의 읍내 진출을 막으며 해산을 명령하였지만, 이에 불응하고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종연·박태현·이철규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보령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0일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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