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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東碩

東碩

1898. 3. 12 ~ 196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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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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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1919년 칠곡군 인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98년 3월 12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7일 대구(大邱)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은 등사판(謄寫版) 독립선언서를 인동교회(仁同敎會) 목사 이상백(李相栢)에게 가져와 만세운동 소식을 알렸다. 이에 이상백은 임용섭(林龍燮)·이영래(李榮來)·박명언(朴明彦)·권영해(權永海)·임점석(林占錫) 등과 의기투합하여 3월 12일 인동면 진평동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3월 12일 오후 8시에 인동면 진평동 뒷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에는 약 2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참여하였다. 이영식과 이상백의 연설이 끝난 후, 주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주도자를 붙잡아 가고 주민들을 해산시켰다. 그럼에도 이튿날인 3월 13일 두 차례, 3월 14일 오전에도 수십여 명이 같은 장소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4일 저녁 김도길(金道吉)·박봉술(朴鳳述)·김성윤(金性允)의 주도로 다시 한 번 200명의 주민들이 모여 인동면 진평동 마을 뒷산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진평동의 기독교 신자 허도봉(許道封)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3월 14일 밤 인동면 진평동의 거리에서 수 명의 사람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돌아다니다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19년 5월 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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