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익
印宗益1871. 2. 2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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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71년 2월 28일 한성부(漢城府) 화동(花洞,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수송동(壽松洞)에서 거주하였다. 일찍부터 천도교(天道敎)를 믿기 시작하여 보성사(普成社)의 간사를 맡았다. 1919년 3월 1일과 2일에 걸쳐 전주(全州)와 청주(淸州) 지역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1919년 2월 28일 오전 7시경 천도교 월보과장(月報課長) 이종일(李鍾一)에게 독립선언서 약 2천장과 여비 40원을 받으며, 전주와 청주로 가서 해당 지역 천도교 유지들에게 전달할 것을 지시받았다. 그날 오전 11시경 남대문 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전을 거쳐서, 3월 1일 오전에 전라북도 전주 천도교구실에 도착하였다. 전주에 도착하여 전주교구 금융원 김진옥(金振玉)에게 독립선언서 약 1700장을 넘겨 주었다. 그리고 김진옥에게 “3월 2일 저녁까지 천도교 전주교구 관할의 각 교구에서 그날 밤 통행인이 많은 지역에 독립선언서를 살포해 그 취지를 이해하게 하여 독립운동을 하도록 선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전북 일대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후 곧바로 나머지 독립선언서 약 300장을 가지고 충청북도 청주로 이동하였다. 3월 1일에는 전북 이리역에서 만석이라 기차를 타지 못하고 3월 2일이 되어서야 오전 7시경 기차에 탑승해 대전(大田)을 거쳐 충북 청원군(淸原郡) 부강역(芙江驛)에 하차하였다. 이때 충북 청원군 부용면(芙蓉面) 외천리(外川里) 일대에서 천도교 청주교구장 오면수(吳勉秀)를 만나 함께 오후 3시에 자동차를 타고 4시경 청주에 도착하였다. 이때 청주경찰서 고등계 경부(警部) 이성근(李聖根)을 비롯한 3명의 경찰이 경찰서 부근을 지나던 일행을 미행하다가 이들이 천도교 청주교구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일제히 검거하였다. 청주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에게 3월 2일부터 5일까지 3차례의 조사를 받고, 서울의 경무총감부로 압송되었다. 일제의 조사가 끝난 후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했으나 1920년 4월 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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