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希季
希季1900. 7. 11 ~ 1931. 5.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울산군 온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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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900년 7월 11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온양면(溫陽面) 덕신리(德新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중걸(李重杰)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8일 울산군 온양면 남창리(南倉里)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울산 일대에서는 1919년 3월 말을 전후로 만세시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30일에는 울산군청 명의로 된 격문이 울산군의 각 면에 전달되었다. 그 격문에는 면사무소의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4월 2일 언양읍(彥陽邑) 장날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대는 투석전을 전개함으로써 일제 군경의 진압 시도에 저항하자,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하였다. 그로 인해 시위대 1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4월 4일과 5일에는 하상면(下廂面)에서 청년회 간부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4월 8일 장날을 맞이해서 온양면 남창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온양면 석천리(石川里)에 거주하는 이재락(李在洛)은 고종의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서 서울을 방문한 후 독립선언서를 휴대하고 귀향하였다. 이수일(李樹一)에게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을 전해주었고, 이수일은 온양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이수일·이수락(李壽洛)·이쾌덕(李快德)·이용락(李龍洛)과 함께 4월 8일 남창시장 장날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으며, 이쾌경(李快慶)도 만세시위 준비에 합세하였다. 4월 8일 그들과 함께 이용락의 집에서 밤새도록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4월 8일 오후 4시 무렵 시위를 준비한 인사들과 함께 남창시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준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장터에 모인 상인들과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합세하자 일제 군경은 공포탄을 쏘면서 시위대의 해산을 종용하였다. 그러자 이용락은 윤두찬(尹斗讚)의 포목점에서 얻은 광목 4자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적었다. 이어서 그 광목을 막대에 걸었으며, 그 막대를 받은 고기룡(高基龍)이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붙잡혀 1919년 4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5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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