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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興祿

興祿

1853. 10. 18 ~ 192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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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興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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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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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1919년 양주군 진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53년 10월 18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진접면(榛接面) 부평리(富坪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같은 해 3월 31일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9일 밤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에 살고 있는 이재일(李載日)에게 “거주하는 동리의 주민 일동이 그 동리 광릉천(光陵川) 모래밭에 모여서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촉구하는 취지의 격문 1통이 도착하였다. 이재일은 그 취지에 공감하여 바로 격문을 부평리 주민들에게 돌려보게 한 후 3월 31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때 최대봉(崔大奉)·박돌몽(朴乭夢)·유희상(柳熙庠)·양삼돌(梁三乭)·최영갑(崔永甲) 등과 함께 계획에 찬성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하였다. 3월 31일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광릉천 모래밭에 모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부평리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장현리 헌병주재소의 일제 헌병들이 즉시 출동하여 시위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시위 주도자 11명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월,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18일 고등법원에서 1913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삼림령 위반으로 징역 1월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 결과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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