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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興吉

興吉

1897. 1. 28 ~ 192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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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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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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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면‧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7년 1월 28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오후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에게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이라는 계획을 전달받고,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밤 외가천리에 위치한 원곡면사무소 앞에 원곡면의 각지에서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집결하였다. 이들과 함께 이유석·최은식(崔殷植)·이양섭(李陽燮) 등의 지휘에 따라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유석·최은식·이양섭 등의 주도자들은 고조된 만세시위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일제의 경찰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 등 일제의 지역 통치를 위한 주요 시설이 모여 있는 양성으로 갈 것을 제안하였다. 주도자들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횃불을 밝히고, 시위 대열을 조직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의 경계인 성은고개 정상에 도착하자, 주도자들은 행진을 멈추고 집회를 개최하였다. 주도자들의 연설 내용에 매우 공감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일제의 시설들을 공격할 돌멩이와 몽둥이 등을 준비하여 다시 시위 대열을 정비하고, 양성면을 향해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행진하였다. 이날 밤 오후 9시 경부터 양성면의 주민들도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수백 명의 주민들은 양성의 경찰주재소 앞에 모여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성은고개를 내달려 양성면의 시위대와 합류하였다. 이에 약 2,000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어 원곡면과 양성면의 연합 시위대를 이루었고, 이들과 함께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유석·홍창섭·최은식 등의 지휘에 따라 먼저 일제 경찰의 주재소로 행진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주재소를 공격하라”는 최은식의 외침에 호응하여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에 대한 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최은식·김원순(金元順)·이국상(李國相)·이유만(李裕萬)·이태영(李泰榮) 등과 함께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주재소의 창문 등을 깨뜨리고, 안으로 들어가 집기와 기물을 파손하고 주재소 건물에 불을 질러 소실시켰다. 이어 주도자들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와 함께 양성우편소로 행진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이유만 등과 우편소 안으로 들어가 서류를 폐기하고, 집기와 기물에 불을 붙여 소각시켰다. 그리고 최은식·한응교 등과 함께 우편소 부근의 전신 및 전화 통신 겸용의 전신주를 도끼 등으로 찍어 넘어뜨려 양성의 통신을 마비시켰다. 이후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 평소 원성이 높았던 일본상인의 상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자택을 습격하여 상점과 집안의 기물 및 가구들을 불태웠다. 다음날인 4월 2일 새벽까지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원곡면으로 돌아와 원곡면사무소의 담장을 파괴하고, 건물을 소실시킨 후 해산하였다. 이 같은 격렬한 만세시위 관련자를 조사·색출하기 위해 4월 3일 일제는 병력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져 안성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받았고, 이른바 내란죄로 고등법원 예심에 회부되었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는 “만세운동은 소요죄를 구성할 수는 있어도 내란죄를 구성할 수는 없다”라고 결정하고, 경성지방법원을 관할 법원으로 지정하여 돌려보냈다. 그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이 ‘본건 공소를 수리하지 않음’을 선언함에 따라 실제 재판은 만세시위로부터 거의 2년이 지난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 건조물 소훼죄 등을 이유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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