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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洪根

洪根

1902. 12. 14 ~ 1948.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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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洪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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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洪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홍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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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4월 1일 홍천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902년 12월 14일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홍천면(洪川面) 신장대리(新場垈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감리교인(監理敎人)이며, 만세운동 당시 매약종보관업(賣藥種保管業)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4월 1일 홍천면 신장대리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홍천면 만세시위를 처음 계획한 인물은 같은 마을에 사는 차봉철(車奉哲)이었다. 차봉철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직접 목격하고 돌아온 이후 만세시위를 결심하였다. 차봉철은 기독교인 서상우(徐相祐)와 천도교인 오창섭(吳昌燮)에게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고, 뜻을 모아 함께 홍천군에서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하였다. 세 사람은 4월 1일 홍천면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펼치기로 하고, 각자 교인들을 규합하였다. 홍천감리교회(洪川監理敎會)에 같이 다니는 차봉철로부터 직접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동참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김기현(金基鉉)·임윤항(林潤恒, 일명 임준홍(林準弘))·송경섭(宋景燮)·차봉환(車鳳煥) 등이 힘을 모았다. 주도자들과 함께 교인들에게 시위 계획을 알리며 참여를 권유하면서, 군중에게 나눠 줄 작은 태극기도 직접 제작하였다. 거사 하루 전인 3월 31일 다른 주도자들과 고익진(高翼振)의 집 앞 도로에서 모여 결의를 다지는 한편, 홍천·인제(麟蹄) 간 도로공사로 부역 인부들이 많이 모이는 날이기 때문에 거사 당일 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4월 1일 아침,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신장대리 장터로 향하였다. 북방면 중화계리(中花溪里)·하화계리(下花溪里) 등지의 주민들은 도로 공사의 인부로 가장하고 장터로 모였다. 감리교 측 주도자들과 장꾼 및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 계획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였다. 오후 1시 무렵, 천도교 측 주도자인 오창섭과 김영옥(金永玉)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장터로 들어서자, 감리교 측 주도자들과 군중을 이끌고 합류하였다. 이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있던 군중도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고 장터 곳곳을 누비며 만세운동을 펼쳤고,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도 소리 높여 만세를 연호하였다. 오후 늦게 만세 소식을 접한 일본은 춘천수비대(春川守備隊)와 헌병 등을 동원하여 시위를 저지하였다. 그러나 시위대와 같이 막아서는 수비대를 뚫고 헌병분견소로 나아갔다. 이때 헌병들이 주도자 등을 무력으로 체포하는 과정에서 같이 붙잡혔고 군중도 흩어지면서 만세시위도 끝이 났다. 1919년 6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해 7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으며, 이듬해인 1920년 4월 2일 만기 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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