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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顯烈

顯

1900. 12. 1 ~ 1978.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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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顯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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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莞島)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완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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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고금면(古今面)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900년 12월 1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고금면(古今面) 청룡리(靑龍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1월 10일에 17세의 보통학교 학생 정학균(鄭鶴均)과 만나서 고종 서거 1주기인 1월 22일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1월 22일 고금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동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겠다는 계획을 말하자 홍철수(洪哲洙)와 이수열(李守烈) 등도 바로 찬동하였다. 김천녕(金天寧)에게도 독립운동 계획을 말하고 동참 의사를 얻었다. 홍철수·이수열·김천녕 등과 함께 독립운동 격문 7통을 만들어 고금보통학교 기숙사에 배포하였다. 1월 22일 오전 11시 무렵 정학균 등과 같이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아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학생들과 함께 교문을 나서며 독립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2월 10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월 10일, 즉 100일형을 받았다. 수감 중인 1920년 5월 3일 영친왕의 결혼에 따른 특사에 따라서 2개월 18일로 감형되었다. 이후 1932년 4월 고금농민조합사건으로 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옥고를 겪었다. 1933년 6월에 대구형무소에서 만기출옥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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