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라득
張羅得187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공립협회
- · 대한인국민회
- · 샌프란시스코 청년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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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7)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온수리(溫水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1906년 1월 공립협회(共立協會) 샌프란시스코지방회에 가입하였다. 이후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으나, 1907년 2월 24일 『태극학보』 제4회 의손인 명단에서 ‘미국 공립협회 회원’ 자격으로 1원을 출연하였음이 확인된다. 1907년 7월 12일 지방평의원에 임명되었으며, 10월 11일 평의원에 임명되었다. 1908년 12월 5일에는 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샌프란시스코지방회 내에서 언론 활동을 하면서 실업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1907년 10월 18일 샌프란시스코 청년회에서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정략(政略)에 대해 연설하였으며, 같은 날 제국신문을 위한 연조금(捐助金) 모집 취지서의 공동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1월 8일 『공립신보(共立新報)』의 확장을 위한 취지서에도 공동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1월에는 샌프란시스코 청년회에서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정치가 아니라 실업에 힘을 써야한다”는 취지로 연설하였고, 12월에는 ‘상업을 발달할 방책’에 대해 연설하였다. 1908년 8월에도 샌프란시스코 청년회에서 “문학보다 실업이 중요하다”는 주제의 토론에 참여하였다. 1908년 12월 미국인 스티븐슨(D. W. Stevens)을 처단한 장인환(張仁煥) 재판에 이모 씨와 증인으로 출석하여, “장인환이 범행 전부터 행동이 이상하였으며, 확실히 미친 사람”이라고 증언하였다. 당시 장인환 측은 범행 당시 ‘정신 이상’을 주장하였다. 1909년 2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가 창립되면서 샌프란시스코 지방회도 그 산하로 편입되었다. 그해 5월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장 대리를 맡았으며, 1910년에는 구제원으로 선임되었고, 5월에는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10년 1월에는 캘리포니아 대학생이었던 이대위(李大爲)의 졸업 때까지 2년간 학비로 연 15원을 출연하였다. 1911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지방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나 7월에 사임하였고, 8월에 총무, 10월에 대의원을 맡았다. 1911년 10월 27일 샌프란시스코 지방회에 권업부 설립을 건의하였다. 10월에는 리버사이드 지방회 대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12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의무금 수봉위원을 맡기도 하였다. 이후 1928년 대한인국민회 오클랜드 지방회가 창설될 때 선출된 임원 15인 중 1명에 포함되었다. 1930년 3월에는 오클랜드에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1931년 3월 1일 스탁턴 한인 예배당에서 열린 제1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하였다. 주로 한인 교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1907년 7월 19일 『한인연합교회보』 발간 시, 장로교인으로서 발기인에 포함되었다. 1931년 12월 31일 스탁턴 교회 성탄 경축비 명단에도 이름이 확인되며, 1943년 샌프란시스코 예배당 수리에 6원 75전을 지원하였다. 이와 함께 1907년 이래 1945년까지 꾸준히 독립운동 의연금 모집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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