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致燮
致燮미상 ~ ?
관련 단체
- · 한국독립당
- ·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 · 민족혁명당
- · 한국광복군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생년도와 출신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1932년 11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의열단·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등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단체와 미주지역의 대한인국민회·대한인교민단 등이 참여하여 독립운동세력의 통일을 목적으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日戰線統一同盟)을 결성하자, 한국독립당 당원 자격으로 가입하였다. 1934년 1월 한국독립당이 항저우(杭州)로 본부를 이전하고, 광둥(廣東)·베이핑(北平)·난징(南京) 등지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이때 박찬익(朴贊翊)·강창제(姜昌濟)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 난징지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4년 1월 난징에서 소집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제2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가맹단체를 포함한 모든 혁명단체를 해소하고 그 단원을 통일동맹에 귀속시켜 일원화한다는 「대동단결조성방침」이 의결되었다. 이 방침에 따라 1935년 7월 민족혁명당이 창당되었다. 민족혁명당은 창립대회 선언에서 한국 민족의 혁명역량 총단결, 민족적 무장총동원 준비, 반일동맹군 결성을 다짐하는 등 통일동맹의 협동전선론 계승을 천명하였다. 민족혁명당 창당과 함께 통일동맹과 가맹단체들은 즉시 해체 또는 해소선언을 발표하여 협동전선으로서의 민족혁명당 성립을 뒷받침하였다.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한국독립당을 해체하고 민족혁명당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총사령부(韓國光復軍總司令部)가 창설되자 참여하였다. 광복군이 발전 궤도에 오르게 됨에 따라 중국 측의 간섭 범위도 좁아져서 1943년 8월에는 참모장과 부관, 그리고 재정 및 군수품을 취급하는 군수처장과 군사과장만 중국인으로 보직되고 대부분 간부가 한국인 장교로 교체되었다. 임시정부 측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광복군을 속박하던 「한국광복군 행동 9개 준승」이 취소되자, 1944년 12월 9일 「한국광복군 잠행 조직 조례」에 의하여 조직 체계가 개편되었다. 이즈음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 제3과장에 임명되어 총사령관 이청천(李靑天), 참모장 김홍일(金弘壹), 고급참모 채원개(蔡元凱)·송수창(宋壽昌)·이복원(李福源)·김자동(金資董), 부관 윤경빈(尹慶彬), 비서 지복영(池復榮), 참모처장 최용덕(崔用德), 제1과장 이준식(李準植), 제2과장 김관오(金冠五), 제4과장 송욱동(宋旭東) 등과 함께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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