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泰勳
泰勳1869. 5. 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노농회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구국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1869년 5월 9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고령면(高靈面) 관동(館洞)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전라남도 목포(木浦) 죽동(竹洞)이다. 1919년 10월 경성부 내자동(內資洞) 윤철(尹喆)의 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조한호(趙漢鎬)의 독립운동자금 모집 요구를 수용한 윤철의 권유를 받고 수락하였다. 1920년 7월(음) 김정술(金廷述)·윤철·이중혁(李重赫)과 함께 임시정부에 협력하고자 소농민 단체 노농회를 조직하고 회원을 모집하였다. 8월에는 윤철·최종응(崔鍾應)과 함께 임시정부 파견원 고일정(高一政)의 권유로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의 자산가 조서를 작성하고, 11월에는 경북 영천군(永川郡) 금호면(琴湖面) 오계리(五溪里) 조석환(曺奭煥), 영천군 청경면(淸鏡面) 상리동(上梨洞) 손병영으로부터 각각 1,000원씩 모집하여 임시정부로 보냈다. 조선 13도에 선정사(宣政使), 각 군과 면에 관장(管長)이라는 조선독립운동을 위한 행정기관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김창환(金昌煥)·윤영돈(尹榮敦)·윤철·이동식(李東植) 등과 함께 최종응을 경상북도 선정사, 유학규(柳學圭)를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관장, 유만규(柳滿圭)를 전북 흥덕군(興德郡) 관장에 임명하고 점차 지방행정조직을 완성하려 하였다. 1921년 2월경에는 자산가 조서에 기초하여 경북 칠곡군(漆谷郡) 지천면(枝川面) 금호동(琴湖洞) 윤병돈(尹炳敦) 외 10여 명에게 독립운동자금 2,000원과 5,000원 납입서를 보내고, 1921년 5월경 대구(大邱) 정거장 앞에서 최종응을 통하여 윤병돈으로부터 300원을 받았다.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주력하고 있던 1921년 5월 20일 경기도경찰부에 체포되어 1922년 3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등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당시 거주지는 경성부 중림동(中林洞) 181번지였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되었다가 1922년 12월 8일 함흥형무소로 이감되었다. 지병이던 연주창(連珠瘡)으로 병세가 위중해져서 1924년 7월 8일 동아일보 함흥지국장 박용하(朴鎔夏)의 보증으로 함흥 자혜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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