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今同
曺今同1911. 6. 25 ~ 1945. 3.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 · 일본공산당
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관련 사건
- · 광주학생항일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6) 1911년 6월 25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능주면(綾州面) 석고리(石庫里)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강요로 평산금동(平山今同)·평산용(平山勇)으로 창씨개명하였다. 광주학생항일운동(光州學生抗日運動)에 참여한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 이하 ‘전협’) 등 재일한인과 일본인 노동자를 위한 노동·사회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일제의 민족차별 대우와 교육정책 철폐를 주장하는 광주학생항일운동 국면에서 채규호(蔡奎鎬)·기회준(奇會俊) 등 학생들과 동맹휴학에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더 이상 항일운동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맹약서를 제출하라는 학교 측의 요구를 거부하여, 양길영(梁吉英)과 함께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한인 노동자를 위한 노동·사회운동에 종사하다가 1931년 1월 전협에 가입하여 관동자유노조(關東自由勞組) 지포가두반(芝浦街頭班) 위원이 되었으며, 전협 토목건축 도쿄지부 상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일전(日電)과 일금(日金) 서남지구 책임자 등을 거쳐 1934년 10월부터는 전협의 재건운동에 진력하는 등 노동운동을 활발히 하였다. 이렇듯 재일한인과 일본인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을 활발히 이끌던 가운데 1935년 3월 30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12월 1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옥고를 겪었다. 1936년 말에 풀려났지만, 다시 붙잡혀 1937년 2월 19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에서 다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여러 차례에 걸친 수감 생활 후에도 일본 내 노동운동에 관계하면서 옛 전협 쇄신동맹파(刷新同盟派)를 중심으로 일본공산당(日本共産黨) 재건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41년 2월 26일 재차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3월 23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6년을 받고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옥고를 겪다가 1945년 3월 1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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