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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식

鄭圭植

1920. 11. 4 ~ 1950.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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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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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榮川)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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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920년 11월 4일 경상북도 영천군(榮川郡) 자양면(紫陽面) 현읍리(玄邑里)에서 아버지 정연량(鄭淵亮)과 어머니 김씨(金氏)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선행(善行), 호는 효봉(曉峯)이다. 일본에서 사용한 이름은 오천규식(烏川圭植)이다. 1938년 3월 영천의 임고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시(大阪市)에 있는 오사카공학교(大阪工學校)에 입학하였다. 1941년 8월 오사카시 북구(北區) 동야전정(東野田町) 식촌영차랑(植村榮次郞) 집에 신문배달원으로 고용되었다. 이미 그곳에서 신문배달원으로 있던 민춘기(閔春基)를 만나 동지가 되어 서로 민족 해방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42년 1월 민족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키우기 위해 오사카중학교(大阪中學校) 제3학년에 편입할 것을 목표로 삼아 면학 중이었고, 민춘기는 교토(京都) 도시샤중학(同志社中學) 제4학년에 편입하였다. 『삼민주의(三民主義)』 등 민족운동 관련 서적을 탐독하면서 손문(孫文)의 삼민주의에 착안한 민족운동 전개를 목표로 삼았다. 1942년 8월 최문전(崔文典)이 신문점에 고용되자 그를 동지로 가담시키고 사쿠라노미야공원(桜)ノ(宮公園)에서 여러 차례 모임을 가졌다. 회합을 통해 참정권 획득과 같은 정치투쟁 등 미온적 운동으로는 민족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후 청년층의 의식 선봉 분자를 결집해서 독립혁명의 모체가 될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만주에서 활약하고 있던 김일성군(金日成軍), 대도군(大刀軍)과 연락을 취해 독립혁명 투쟁에 궐기하도록 해서 목적을 완수해야 한다는 근본방침을 마련하였다. 당면한 활동 목표로 동지의 획득, 무자각한 일반 동포에 대한 지도 계몽을 결정하였다. 장래의 조직 확대에 대비해서 여성을 동지로 획득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부산부항고등여학교(釜山府港高等女學校) 4년생 금자초대(金子初代)를 만나 민족적 계몽을 하고, 식촌(植村)의 집에 신문배달원으로 취업 중이었던 학생 문원영방(文原英邦) 외 수 명, 오사카시(大阪市) 북구(北區) 북동심정(北同心町) 1의 11번지 조선인 하숙인 강본(江本)의 집에 거주하던 이남걸(李南杰) 외 수 명 등과 교우하며 세계 정세와 한국 통치 문제를 내세워 민족의식을 주입하려고 활동하였다. 민춘기의 친구이자, 대구사범학교에 재학 중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퇴학을 당한 서산옥제(西山玉濟)가 1942년 9월경 오사카로 온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와 회합하여 조선 독립혁명의 모체인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군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발각되어 1942년 10월 20일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43년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44년 12월 10일 풀려났다. 2003년 4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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