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相煥
曺相煥1866. 1. 10 ~ 1908. 2.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산남의진(산남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관련 사건
- · 1907년 12월 7일 영덕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1866년 1월 10일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자양면(紫陽面) 거동리(巨洞里)에서 아버지 조병전(曺秉銓)과 어머니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석보(石甫)이다. 평소 담력이 있고 총을 잘 쏘았다고 한다. 산남의진(山南義陳)에 참여하여 의병대장 정용기(鄭鏞基)와 정환직(鄭煥直), 그리고 최세윤(崔世允)의 휘하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3월 경북 영천에서 정용기가 결성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초장(哨長)과 도포장(都砲將)으로 활동하였다. 평소 동지들에게 “이때를 당하여 국가의 위급함을 돌아보지 않으면 백성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보현산(普賢山) 일대의 포수를 비롯하여 뜻있는 사람과 군수물자를 모집하는 데 앞장섰다. 그해 4월 28일 정용기가 신광면(神光面) 우각리(牛角里)에서 경주진위대 참령 신석호(申錫鎬)의 간계에 속아 체포된 뒤 산남의진이 해산하게 되자 귀향하였다. 1907년 4월 정용기가 산남의진을 다시 일으키자 그의 지휘 아래 청송(靑松)·청하(淸河)·영천(永川) 일원에서 일본군을 공격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그해 10월 7일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북상을 준비하던 정용기가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사망한 뒤, 그의 아버지 정환직(鄭煥直)이 아들을 대신하여 산남의진의 대장에 추대되었으므로 다시 항일 의병투쟁에 참여하였다. 1907년 11월 16일 대장 정환직이 붙잡혀 사망하자, 1908년 2월 5일 산남의진 대장에 추대된 최세윤(崔世允)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최세윤이 북상계획을 중단하고 지역분대(地域分隊)의 정예화를 통한 유격전을 구상하자, 영천 화산(花山)을 본거지로 하여 신녕(新寧)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이세기(李世紀) 등과 함께 청송(靑松)·안동(安東)·의성(義城)·군위(軍威)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펼치던 중 청송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붙잡혔다. 일본군으로부터 전향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끝내 거부하였다. 1908년 2월 23일 감시하던 일본군을 처단하고 탈출하였으나, 군위군(軍威郡) 효령면(孝令面) 장터 뒷산에서 일본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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