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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根伯

趙根伯

1872. 3. 13 ~ 1908.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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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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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靑松)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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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2년 3월 13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서면(縣西面) 두현리(豆峴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이명은 조성일(趙性逸)이며, 한자를 달리한 조근백(趙勤伯)을 쓰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일제 침략이 심각해지자 전국적으로 항일 의병이 다시 일어났다. 이 무렵 경북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일으키자 함께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산남의진은 1905년 을사늑약 직후 시종관 정환직(鄭煥直)이 그해 (음)12월 5일 고종의 밀지를 받들고 아들 정용기를 불러 상의한 뒤, 1906년 3월 경북 영천에서 일으킨 의병부대이다. 이 때 모인 의병의 수는 약 1,000여 명이나 되었고, 의병부대는 본부 대장 아래 중군장·참모장·소모장·도총장·선봉장·후봉장·좌영장 등 30여 부서를 두었다. 산남의진에 들어가 3월 5일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의병부대와 함께 영천을 경유하여 청송을 향해 진군을 시작하였다. 이때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가 경북 영해(寧海)에서 일본군에 패하여 도움을 청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돕기 위해 영해 방향으로 진군하였다. 그러나 경주군(慶州郡) 신광면(神光面) 우각(牛角)을 지나던 중 1906년 4월 28일 경주진위대의 간계로 의병장 정용기가 붙잡혀 대구(大邱) 경상감영으로 압송되었다. 이후 의병부대는 중군장 이한구가 지휘를 하였으나, 7월경 해산되었다. 1906년 9월 고종의 특사로 풀려난 정용기는 1907년 4월 의병부대를 다시 일으켜 영해·청하(淸河)·청송·포항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다. 1907년 10월 8일 본대가 청하군 죽장면(竹長面) 입암(立巖)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기습 공격을 받아 정용기를 비롯한 중군장 이한구(李韓久)와 참모장 손영각(孫永珏) 등 여러 장령들이 전사하고 의병부대가 일시적으로 무너졌다. 이때 입암전투의 패배를 계기로 의병부대에서 나와 고향으로 돌아와 은신하였다. 하지만 1908년 6월 20일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군에 붙잡혀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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