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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응팔

全應八

1878. 4. 7 ~ 197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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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응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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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永川)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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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8년 4월 7일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자양면(紫陽面) 삼귀리(三龜里)에서 아버지 전록영(全祿永)과 어머니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용궁(龍宮)이다. 자는 국삼(國三), 호는 석강(石崗)이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1906년 3월 고향에서 산남(山南)의병부대가 결성되자 이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이때부터 1907년 일제 경찰에 붙잡힐 때까지 약 2년간 영천(永川)·청하(淸河)·의흥(義興)·군위(軍威)·의성(義城)·청송(靑松)·영덕(盈德) 등 경북 지역 여러 곳에서 활동하였다. 경북 영천군 자양면 충효동(忠孝洞)에서 결성된 산남 의병부대는, 영해(寧海)지역 신돌석(申乭石, 1878~1908)의병부대와 함께 당시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의병부대였다. 산남 의병부대는 동해안 쪽으로 북상하던 중 1907년 10월 8일 영일군 죽장면(竹長面) 입암(立巖)전투에서 대장 정용기(鄭鏞基), 중군장 이한구(李韓久), 참모장 손영각(孫永珏) 등을 비롯한 지휘부의 많은 인사들과 병사들이 전사·순국하였다. 하지만 정용기의 아버지 정환직(鄭煥直)이 남은 병사들을 수습하여 계속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활동 내용과 시기가 자료 부족으로 구체적으로는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산남 의병부대가 영천의 보현산(普賢山)과 영일의 동대산(東大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활동한 기록이 보이며, 정용기 대장과 정환직 대장 시기에 활동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6년 3월부터 1907년 사이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기록이 남아있다. 1907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실형을 받고, 대구 감옥에서 5년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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