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하
金根河1897. 4. 1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대한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선천경찰서폭파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4월 18일에 태어났고, 출생지는 미상이나 가출옥 사실을 보도한 1922년 5월 16일자 『동아일보』 보도 기사에 ‘평양 종로 김근하’라는 사실에서 평양(平壤) 출신으로 추정된다. 1919년 3·1운동 후 남만주로 건너가 그해 봄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대화사(大花斜)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그해 말 연호(年號) 사용 문제로 단기(檀紀) 또는 대한제국의 융희(隆熙) 사용을 주장하는 복벽주의 세력인 기원독립단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연호 사용을 주장하는 공화주의 세력인 민국독립단으로 양분되었다. 1920년 8월 민국독립단은 임시정부의 주도 아래 대한청년단연합회, 국내 비밀결사인 의용단 등과 결합하여 대한광복군총영을 결성하였다. 이보다 앞선 5월 초에 미국 상하 양원 의원단 42명이 8월에 극동 지방을 시찰할 때 한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자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진영은 이 기회에 독립에 대한 한국 민족의 의지를 드러내고 동시에 민심을 격동시켜 독립을 촉진시키고자 대대적인 폭탄 거사를 계획하였다. 이에 따라 광복군 총영은 소속대원 중에서 결사대를 3대로 조직하고 국내에 파견하였다. 제1대는 서울에, 제2대는 평양에 그리고 제3대는 평북 선천에 파견하였다. 1920년 8월 20일 광복군 총영의 결사대원 이학필(李學弼)·임용일(林龍日)·김응식(金應植)이 선천에 파견되어 오자, 당시 신성(神聖) 중학교 학생인 박치의(朴治毅) 등과 함께 미국 의원단이 선천역을 통과하는 8월 24일 거사하기로 하였다. 결사대원이 관톈현(寬甸縣)으로 돌아가 거사에 사용할 폭탄을 가져왔을 때는 이미 미국 의원단이 선천을 지나간 8월 30일이었다. 이들은 처음 거사 계획은 실패하였지만, 다시 거사를 의논하여 선천경찰서 및 선천군청 토지대장 창고 두 곳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정하였다. 밤을 기다려 9월 1일 오전 3시경 결사대원 임용일과 김응식은 선천군청 토지대장 창고로 가서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하였고, 박치의는 이학필과 함께 선천경찰서로 가서 폭탄을 던져 경찰서 청사를 크게 파괴시켰다. 동시에 이들은 한국인 친일파 관리들에게 경고하는 「최급경고문(最急警吿文)」과 부호들에게 독립운동 자금의 의연(義捐)을 요구하는 「재산가의 의연을 청함」 등의 격문을 대한광복군 총영의 이름으로 살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해 9월 7일까지 박치의 등 2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1920년 12월 20일 평양지방법원 선천지청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여 1922년 4월 12일 징역 3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이에 불복하여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징역 3년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겪던 중 1922년 5월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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