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환
張琴煥1883. 5. 27 ~ 1963. 1. 2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국민회
- · 대한인국민회
- · 한국독립당 하와이총지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9)
관련 사건
- · 해외한족대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9) 1883년 5월 27일 평안남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1904년 하와이로 이주한 이후 행상(行商)을 하여 지역 유지로 성장하였다. 1908년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 의거 때 후원금과 변호사 비용 모금에 동참하였다. 1909년 3월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국구유라 지방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이듬해 5월에는 카우아이(Kauai) 하라학가 지방회 평의원을 역임하였다. 11월 카우아이 후라이아 지방회 구제원으로 피선되어 한인동포들 경조사에 앞장섰다. 논설과 연설활동에도 참여하였는데, 1910년 10월 『신한국보』에 「금일 우리의 급선무」라는 논설을 실어 해외 동포의 대사업이 독립전쟁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도적의 물건’이 되어버린 조국의 현 상황을 “자유 독립국이었던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하면서 “대한제국 독립만세의 영광을 위한 해외 동포들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1913년 12월에는 국민회의 첫 교육사업으로 카우아이 콜로아(Koloa)지방에 세워지는 한글학교인 신흥학교 설립에 연조하는 등, 지역 유지로서 교육비를 비롯하여 한인들의 호상비·이재동포 위로금·구제금 등을 꾸준히 후원하였다. 만세운동 이후에는 3·1운동 기념금을 지속적으로 모금하였다. 1932년 하와이로 건너온 현순(玄楯) 목사의 「상해진상」 연설로 윤봉길 의거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정부후원회를 조직, 재정을 모집하였다. 이때 와히아와 지방후원회에서는 1년에 12원(圓)씩 내기로 동참하였다.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지원한 하와이애국단(愛國團)은 1940년 5월 9일 한국독립당 하와이총지부로 명칭을 변경하였는데, 당원이 되어 한국광복군 창설과 충칭(重慶)특파원 경비 및 독립운동단체에 자금을 지원하였다. 1945년 5월에는 상항회의(桑港회의, 샌프란시스코회의) 한국대표 지원에 특연을 보냈고, 독립을 맞이할 때까지 독립금 명목으로 의연을 계속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조국과 하와이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46년 호놀룰루에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을 새로 건축할 때, 국민회 청년위원으로 회관 이전·수리 및 설비 비용 등을 연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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