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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仁福

鄭仁福

1898 ~ 192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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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仁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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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철산(鐵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철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미의원단 방문시 신의주역 폭파
  • · 겸이포제철소 폭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8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후 압록강을 넘어 서간도 콴뎬현(寬甸縣)으로 갔다. 그곳에서 평북 의주 출신의 송암(松菴) 오동진(吳東振)이 주도해 만든 광제청년단(廣濟靑年團)에 가입하였다. 오동진 또한 만세운동 후 서간도로 왔기에 아직 군사장비가 갖추어지지 않아 광제청년단은 일제를 상대로 직접적인 무장활동은 벌이지 못하였다. 따라서 만주와 국내를 연결하며 그 준비를 해가던 광제청년단은 1919년 11월 안병찬(安秉瓚)·김승만(金承萬) 등이 주도해 국내외 청년단들을 연합해 만든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의 일원으로 가입하였다. 따라서 당연히 청년단연합회의 회원이 되었다. 청년단연합회는 신의주의 대안(對岸)인 안둥현(安東縣, 현 단둥시[丹東市])에 본부를 두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는 단체였으며, 임시정부가 한국내의 활동을 위해 설치한 교통국의 업무를 전담해 수행하였다. 안둥현에 교통부 안둥지부 사무국을, 인접한 콴뎬현에 관전통신국을 설치해 국내의 평안도와 함경도의 여러 지역에 지국(支局)을 만들어 연결시키고 이를 서울까지 연장시켜 독립운동의 조직망을 구축해 활용하였다. 1920년 2월 콴뎬현에 임시정부 직속기관인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이 성립되었다. 이 단체는 서간도 독립운동 단체들인 청년단연합회를 비롯해 한족회(韓族會)·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 등이 통합한 단체였다. 광복군은 부속기구로 참리부(參理部)·사령부·군영(軍營)을 설치하고 특수부대인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을 조직하였다. 광복군총영을 총괄해 지휘할 총영장은 광제청년단 단장을 역임한 오동진이 맡았다. 이번에도 광제청년단 단원으로 청년단연합회까지 함께한 이력을 가졌기에 총영의 대원이 되었다. 미국 국회의원단이 1920년 8월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에 총영장 오동진은 방문단을 접촉해 일제의 폭압적 탄압을 고발하고,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서방세계에 알리고자 계획하였다. 의원단이 통과하는 한국내 대도시에서 의열활동을 일으켜 이목을 집중시키는 한편, 직접 의원단을 만나 한국인의 염원이 담긴 독립을 위한 호소문을 전달한다는 작전을 세웠던 것이다. 그를 위해 총영의 대원 중 용맹하고 민첩한 인물들로 4개의 특파대를 결성하였는데, 2명의 동지와 함께 신의주로 향하는 제4대에 편성되었다. 나머지 파견대는 김영철(金榮哲)·김성택(金聖澤)·김최명(金最明) 등으로 구성된 서울 방면으로 향한 제1대, 평양방면으로 향한 장덕진(張德震)·박태열(朴泰烈) 등으로 구성된 제2대, 선천방면으로 향한 이학필(李學弼)·임용일(林龍日) 등으로 구성된 제3대였다. 제4대 특파대는 거사에 사용할 폭탄을 휴대하고, 여성대원 안경신(安敬信)의 안내를 받아 신의주로 향하였다. 신의주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고, 거사를 일으킬 경우 소문이 다른 지역으로 빨리 전파될 수 있는 장소인 역으로 향하였다. 특파대는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역 층계로 올라가 역사내의 사람들이 모이지 않은 지점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건물 일부가 파괴된 이 의거는 여행객들의 입을 통해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 거사 후 특파대는 황해도 송림군(松林郡)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 시기 식민지 한국내의 대표적 제철소인 겸이포(兼二浦)제철소에 폭탄을 투척해 일부를 파괴하였다. 겸이포제철소는 1914년 일제의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三菱)가 세운 것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철강은 대부분 군수품 제조에 쓰였다. 따라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핵심 원료를 만드는 곳이었다. 두 거사를 끝내고 본부로 귀대하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였다. 특파대가 평북 용천군(龍川郡)에 당도했을 때 철통같이 펼쳐진 일제 경찰대와 육탄전을 벌였으나 붙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일제 경찰들에 의해 용암포(龍巖浦)로 이송 도중 자동차 안에서 육탄전을 벌여 탈출에 성공한 끝에 콴뎬현의 본부로 귀대하였다. 서간도로 돌아가 한·중의 국경지방이면서 본부가 있는 콴뎬현에서 활동하는 한편, 신의주와 압록강철교로 연결돼 있어 한국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가장 심했던 안둥현을 무대로 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1922년 3월 2일(다른 자료는 3월 7일로 나옴[김승학, 『한국독립사』, 독립문화사]) 안둥현 삼도구(三道溝) 중국인의 집에 머물다 밀정 김윤옥(金允玉)의 밀고로 기습공격한 일제 경찰대와 전투를 벌이다 안용봉(安龍鳳)·박완식(朴完植)·이명하(李命夏)·백학원(白學源) 등 7명의 동지와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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