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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주

金國柱

1891. 4. 3 ~ 1957.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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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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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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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4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도근(島槿)이다. 1915년 서간도(西間島) 류허현(柳河縣)으로 이주하였다. 1922년 8월 성립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의 활동상만 자료로 남아 있다. 통의부는 1920년 10월부터 일제가 자행한 경신참변(庚申慘變)으로 파괴된 남만주(南滿洲) 한인 사회와 독립군 기지를 복원하기 위해 여러 독립군단(獨立軍團)이 통합돼 성립된 단체다. 통합에는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평안북도독판부(平安北道督辦府) 등 17개 단체가 참여하였다. 총장 김동삼(金東三)의 지휘 아래 민사·재무·학무·교섭·권업·교통·군사·참모·법무 등 행정부서와 사판소가 설치되고 입법기관인 중앙의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항일 무장 활동을 위한 의용대가 조직되었다. 성립 초기 통의부 의용대 제1중대 참사(參士)에 임명되었다. 1922년 8월, 부하대원인 김전(金銓)과 이상희(李尙熙) 등 10명으로 유격대를 편성하여 서간도 지역에서 군사활동을 수행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들은 서간도 지역 친일 부호들의 집을 습격해 군자금 2,200여 원을 모집하고, 일제의 밀정 2명을 처단하였다. 유격대는 작전 수행 과정에서 중국 산립대(山林隊)와 교전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무사히 작전을 마치고 귀대하였다. 1923년 초 3명의 부하 대원에게 류허현에 거주하면서 한인들을 괴롭히고 독립군의 활동을 방해한 일본인 고가와(小川) 일가를 처단토록 명령해 이를 완수하였다. 같은 해 3월 2일에는 부하대원 1명과 하이룽현(海龍縣) 북산성자(北山城子)에서 잡곡상을 경영하는 한인 한식(韓湜)의 집으로 가서 친일 단체 회원들을 모아 놓고 ‘독립군은 금전에 욕심이 있어 군자금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이니 매국노의 짓을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라는 당부의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친일 한인들에 대한 설득 작업은 같은 해 7월 11일 후이난현(輝南縣) 양자초(樣子哨)의 조선인회 지부(支部)에서도 수행하였다. 1923년 12월 5일에는 류허현에 위치한 민족학교인 동명학교(東明學校)에서 반일한인대회(反日韓人大會)를 개최하였다. 차용육(車用陸)·장치보(張致保) 등 동지들과 독립군에 협조적인 한인을 모아 대회를 개최하고, 은밀히 한인에게 접근하는 일제의 관헌을 적발해 처단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인회를 척결하도록 당부하였다. 그리고 조선인회의 강압이 있더라도 그곳에 회비를 내주지 말고 독립군 자금으로 납부할 것과 의심나는 일본 관헌의 행동을 발견하면 즉시 독립군 본부에 보고할 것을 결의하도록 하였다. 1924년 초, 의용군 제4중대 3소대장으로 승진되어 임명되었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 통의부 내 무장활동파인 채찬(蔡燦, 이명 백광운(白狂雲))·김원상(金元常) 등이 의용군 제 1·2·3 중대와 독립소대 및 유격대를 이끌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部)를 성립시키며 이탈하였다. 통의부 의용군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그 와중에 5중대장 김명봉(金明鳳)도 참의부로 갈 의사를 밝혔다. 이에 1924년 6월 16일 잔류한 다른 장교들과 임시회의를 개최해 하나의 통일된 힘이어야만 조국 광복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서약문을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그리고 제1중대 소대장이었던 김보국(金保國)과 이탈하고자 한 김명봉을 설득하기 위한 위원에 임명되어 파견되었다. 하지만 김명봉은 설득에 응하지 않아 5중대는 결국 참의부로 가고 말았다. 이러한 갈등 속에 김명봉은 같은 해 7월 2일 잔류파의 저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1924년 8월에는 직속상관인 4중대장 홍기주(洪基柱)가 일제에 귀순하는 참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배반 사실을 감지하고 3소대원을 이끌고 그를 처단하고자 전투를 벌였으나 결국 홍기주는 4중대 소유의 무기 대부분을 빼돌려 일제에 귀순하였다. 1924년 한 해 많은 분란을 겪은 통의부는 그해 후반부터 또 다시 통합 운동을 벌여 광정단(光正團)·의성단(義成團) 등 7개 단체와 함께 11월 24일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켰다. 잔류파로 남아 정의부 소속원으로 활동하였을 것으로 추론되나, 그에 대한 자료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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