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순
鄭基淳1899. 5. 22 ~ 1922. 2. 17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대한통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99년 5월 22일에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성장 과정 등은 알 수 없다.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일제 경찰의 총격에 의해 희생되었다. 1919년 국내에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발발하자, 같은 해 4월 15일 만주 지린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유림 및 의병계열 독립운동가 56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그해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자, 공화주의를 표방한 임시정부의 지지 여부에 따라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민국파 독립단과, 복벽주의를 주창하고 단기를 연호로 삼는 기원파 독립단으로 분리되었다. 민국파 독립단은 이후 1920년 8월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사령부에 통합되었고, 기원독립단은 독립적인 조직을 유지하였다. 나아가 대한독립단은 1919년 8월과 1920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국내에도 지단을 설치하기 위해 특파원을 파견하여 평안도·황해도 등지에 80여 개의 지단을 설치하였고, 국내의 인사들과 연합하여 단원 확보 및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한편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설정하고, 같은 해 7월 26일과 8월 1일 「대한광복군참리부규정(大韓光復軍參理部規程)」, 「대한광복군사령부규정(大韓光復軍司令部規程)」, 「대한광복군영규정(大韓光復軍營規程)」을 각각 공포하여, 군무부 직할 서간도 지방사령부로 대한광복군사령부(大韓光復軍司令部)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군수기관으로 대한광복군참리부(大韓光復軍參理部)를 조직하였다. 이에 앞서 지린성(吉林省) 안동현(安東縣)에서는 7월 이후 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摠營)이 조직되었는데, 이 대한광복군총영은 1920년 3월경 안동현에서 조직된 광복단(光復團)을 주축으로 결성되었으며, 이후 이 조직이 실질적인 지방사령부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2년 2월 지린성 환런현(桓仁縣)에서 열린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에서 대한독립단을 비롯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광한단(光韓團)·한교민단(韓僑民團)·평북독판부(平北督辦部)·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등 대표자들이 모여 각 조직을 통합한 형태의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조직하였다. 이때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검찰(檢察)로 활동하였다. 1922년 2월 14일 분대장(分隊長) 고승득(高勝得) 및 검찰 김득하(金得河) 등 6명과 함께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성서면(城西面) 옹암동(瓮岩洞)을 습격한 후 만주로 귀환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은 압록강을 건너 펑톈성(奉天城) 콴뎬현(寬甸縣)까지 추격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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