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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도

田啓道

미상 ~ 1920.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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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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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로군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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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출생지와 생년월일은 자료의 한계상 알기 어렵다. 1920년 5월경 재만 독립군단(獨立軍團)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헌병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류허현(柳河縣)·퉁화현(通化縣) 등 서간도를 국외 독립운동기지로 개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본격적인 독립전쟁 수행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1911년 4월 성립된 경학사(耕學社)에 이어 이주 한인의 자치를 맡아왔던 부민단(扶民團)을 1919년 3월 13일 한족회(韓族會)로 변경 발족시켰다. 한족회는 행정기구를 편성하고, 독립전쟁을 수행할 군정부(軍政府)를 수립하였다. 그런데 그해 4월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에 한족회 지휘부는 임시정부 인사들과 논의해 1919년 11월 서간도의 군정부를 항일무장활동 기관인 서로군정서로 변경시켰다. 서로군정서 독판(督辦)에 이상룡(李相龍), 부독판에 여준(呂準)이 선임되었으며, 그 아래 정무·내무·법무·군무·참모부 등의 부서가 구성되고, 지청천(池靑天)을 사령관으로 한 의용대가 편성되었다. 헌병대는 이 의용대 내에 편성되었다. 헌병대의 임무는 의용대 소속 독립군의 기강을 단속하는 것도 있었으나, 서로군정서 주변에서 독립군의 활동을 방해하는 친일파를 처단하는 업무도 수행하였다. 1920년 5월 군무사장인 양규열(梁圭烈)의 명을 받고 같은 헌병대원인 권재중(權在重)·전승우(田承雨), 선전위원 박정훈(朴定勳)과 함께 무장대를 구성하였다. 무장대의 임무는 싱징현(興京縣)에서 일제의 밀정 노릇을 하며 독립군에게 피해를 입힌 친일파 원성오(元成五)를 처단하는 것이었다. 싱징현에는 재만 한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조직된 보민회(保民會)라는 친일단체가 있었다. 보민회 회원들은 직접 무기를 소지하고 독립군과 대적하였다. 5월 상순경 한밤중에 동지들과 원성오의 집을 침입하였다. 그리고 원성오를 결박해 밖으로 끌어내 싱징현 중장도(中將道)라는 들판으로 끌고 가 처단하였다. 1920년 후반 많은 독립군들이 소규모 유격전으로 일제에 피해를 입히자, 일제는 1920년 10월 조선 주둔 일본군 제19·20사단, 시베리아파견군, 북만주파견군, 관동군(關東軍) 등을 동원하여 동서남북에서 서북간도를 포위 공격해 왔다. 서간도를 향해 들어 온 병력은 북만주파견군 소속의 철령(鐵嶺)과 공주령(公主嶺)주둔군이었다. 철령주둔군은 스키야마(杉山)대좌가 지휘하는 보병 19연대였고, 공주령주둔군은 삿카(目) 중좌 지휘의 기병 20연대였다. 10월 하순경 이 두 침략군은 각기 구역을 정해 서간도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보민회원들을 앞장세워 지역의 독립군을 색출하고 살해하였다. 1920년 10월 31일 싱징현 왕청문교회로 보민회원을 앞세운 일본군들이 들이닥쳤다. 이 교회는 싱징현 만세운동의 진원지였으며, 교인 다수가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장로이자 한족회 부회장인 김도준(金道俊), 왕청문교회 회장으로 한족회 간부인 황원후(黃元厚), 집사 이봉규 등 10여 명과 함께 일본군에 붙잡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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