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907. 1. 4 ~ 1969. 7.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남만청년총연맹
- · 정의부
- · 국민부
- · 조선혁명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7년 1월 4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부라면(府羅面) 원성리(元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소춘(小春)이다. 1924년 중국 만주로 이주하였고, 같은 해 랴오닝성(遼寧省) 싱징현(興京縣)에서 조직된 남만주청년총연맹(南滿洲靑年總聯盟)에 참여하고, 중앙선전부장(中央宣傳部長)직을 맡아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1925년 정의부(正義府)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2년 8월 만주에서 항일독립군 연합단체로 조직되었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통의부)는 독립에 관한 방향성 및 이념 문제로 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리되었다. 1924년 5월, 군사와 민정을 관할하는 새로운 조직인 참의부(參議府)가 통의부 의용군 일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 조직되었다. 참의부 조직 이후 통의부에서는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려는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1924년 11월 정의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정의부원으로서 항일활동을 지속하였으며, 정의부군 제6중대 삼원보(三源堡) 주둔대장 김보국(金保國)의 부관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에는 정의부 중앙위원장 현정경(玄正卿)의 명령을 받고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싱위엔현(淸源縣)·류허현(柳河縣)·판스현(磐石縣) 등지에서 청년동맹을 조직하는데 앞장섰다. 1929년 정의부 대표 현익철(玄益哲)·김이대(金履大)·이웅(李雄), 신민부(新民府) 대표 이교원(李敎元)·이금천(李金川)·참의부 대표 심용준(沈龍俊) 등은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3부(府) 통일에 관한 비밀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 통합기관으로 새롭게 국민부(國民府)가 조직되었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체제를 지향했으나 행정기능이 우선시 되었고, 주력 활동 부분은 공보, 교육, 농민의 권익옹호 위한 분야였으며, 군자금 모집, 일제 부역자 제거, 독립군 모병 등을 위한 군사행동도 하였다. 이렇게 새롭게 조직된 국민부에 참여하여 항일 활동을 계속하였다. 국민부가 만들어진 1929년 국민부 중앙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교양부에 소속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명확한 시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29년 국내로 잠입하여 함북에 있던 일제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는 데에도 참가하였다. 한편 1929년 9월 국민부의 정당적 성격을 갖춘 기관으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이 만들어졌다. 조선혁명당의 중앙위원 중 많은 인원들은 국민부의 간부로 활약하였다. 국민부와 깊은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던 조선혁명당에서 중앙부서인 선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조선혁명당 간부진은 그를 비롯하여 중앙집행위원장 현정경, 조직부장 고활신(高轄信), 교육부장 김보안(金輔安), 경제부장 장승언(張承彦), 국제부장 최동오(崔東旿), 민중부장 고이허(高而虛), 군사위원회위원장 이웅, 자치위원회위원장 현익철(玄益徹) 등이었다. 1930년 조선혁명당 선전부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발하게 항일 활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일제에 강하게 협력하던 친일단체인 선민회(鮮民會)를 와해시키는 데 앞장섰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