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璟植
璟植미상 ~ 1921. 7. 1
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비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생지와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1920년대 서간도 지역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참모로 활동하였다. 서간도 창바이현(長白縣)에 근거지를 둔 대한독립군비단은 함경도 출신 민족운동가들의 주도로 1919년 5월경 설립된 독립군단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과 협의해 그해 11월 1일 조직을 재정비하고 임시정부의 산하 군단이 되었다. 단장 이태걸(李泰杰), 부단장 김동준(金東俊)의 지휘부 밑에 총무장·재무장·경무부장·참모장 등의 조직을 갖추었다. 군비단이 근거지로 한 창바이현은 백두산자락이 뻗쳐 깊고도 험한 많은 계곡을 이룬 지형을 가진 지역이었다. 따라서 군비단은 이들 계곡에 지단(支團)과 지부(支部), 통신사무국 등을 설치해 병력을 분산배치 하였다. 또한 험난하지만 병력이 머무를 만한 지역에는 훈련장을 만들어 수시로 독립군들을 교육시켰다. 이때 대한독립군비단에 가입하여 참모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7월 1일 간부진을 포함해 전 독립군병사들이 훈련을 위해 밖으로 나가고, 홀로 창바이현 18도구(道溝) 대양동(大陽洞)에 있는 군비단 진영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광복단(光復團) 소속의 독립군 15명이 진영을 찾아왔다. 광복단은 콴뎬현(寬甸縣)에 본부를 두었지만, 험지에 국내진입이 쉬운 창바이현에 제1, 2결사대를 편성해 두 개의 지단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광복단 결사대는 창바이현에 근거지를 가진 군비단을 비롯해 대진단(大震團)·태극단(太極團)·흥업단(興業團) 등과 1921년 1월 15일 독립군연합회를 결성해 함께 협력하며 항일무장활동을 수행하였다. 이때에도 일정한 작전 수행업무를 띠고 광복단군이 진영을 찾은 것이었다. 7월 1일 광복단군이 군비단진영을 찾을 것을 밀정을 통해 알게 된 일제는 중국 측에 공격하도록 압박을 가하였다. 압박을 받은 중국 측은 70명의 경찰 병력으로 공격대를 편성하였고, 여기에 일제 경찰 6명이 합세하였다. 이들은 군비단 병영을 기습 공격해 왔고, 공격을 받고 이춘명(李春明)·이덕룡(李德龍)·진치선(陳致善) 등 광복단군 11명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