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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源英

鄭源英

1872. 11. 8 ~ 195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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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源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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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聞慶)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문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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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용의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872년 11월 8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호서남면(戶西南面) 모전리(茅田里)에서 태어났다. 직업은 한문교사였다. 1921년 용의단(勇義團)에 입단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9월 신태식(申泰植)·김찬규(金燦奎)·이응수(李應洙)가 경북 김천(金泉) 이응수의 집에서 국외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하는 비밀결사 용의단을 결성하였다. 1921년 8월경 이응수와 신태식의 권유로 이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용의단은 만주 서간도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후원하기 위해 국내에 조직된 결사로 김찬규가 서로군정서의 법무사장(法務司長) 김응섭(金應燮)으로부터 국내의 군자금을 모아 줄 것을 요청받고, 총재 이상희(李象羲) 명의의 위임장과 암호문 및 권총 1정 등을 받고 귀국해 결성하였다. 단의 조직은 신태식이 경북단장, 김찬규가 경남단장, 이응수가 경북총무를 맡았고, 군무·군량·재무 등의 부서를 두고 지방의 신망 있는 인물들로 역할을 분담하게 하였으며 주된 활동은 군자금 모집과 단원 규합이었다. 용의단의 군자금 모집 활동은 경상도 일대를 중심으로 대구나 김천 등지의 자산가들에게 「군자금사령서」와 「사형선고서」 등을 우편으로 발송하는 것이었는데, 이대기(李大基)·김종국(金鍾國)·이응수 등이 주로 담당하였다. 군자금 모집 활동은 1921년 8월경부터 1922년 5월경 사이에 이루어졌다. 1922년 4월경 경북 안동(安東)·영덕(盈德), 같은 해 5월경 김천·영일(迎日)·영천(永川)·군위(軍威), 경남 창녕(昌寧) 등의 자산가들에게 우편물을 발송하고 정해진 장소로 군자금을 납부하도록 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단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2년 12월 18일 검찰로 송치되어 고초를 겪었다. 1923년 6월 14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1923년 9월 3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예심 면소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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