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雲馹
鄭雲馹1884. 1. 16 ~ 1956. 2.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달성친목회
- · 조선국권회복단
- · 대한광복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대구권총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4년 1월 16일 경상북도 대구(大邱) 동산면(東山面) 신전동(新田洞)에서 태어났다. 호는 춘주(春洲), 이명은 한자를 달리 한 정운일(鄭雲日)이다. 일찍이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대구에서 전당업(典當業)으로 부호가 되었다. 1908년 9월 대구에서 서상일(徐相日) 등과 달성친목회(達城親睦會)를 조직하고 간사로 활동하였다. 계몽운동 단체였던 달성친목회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오다가, 1913년 9월 서상일에 의해 조직이 정비·강화되면서 항일 비밀결사가 되었다. 1915년 (음)1월 15일 서상일 등과 함께 대구 안일암(安逸庵)에서 국권회복을 목표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을 결성하였다. 대구에 중앙총부를 두고 마산(馬山)에 그 지부를 두었다. 그해 (음)7월 15일 박상진(朴尙鎭) 등이 풍기(豊基)의 광복단(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을 통합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지원하고 독립군을 양성함으로써 무력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1915년 4월부터 6월까지 최병규(崔丙圭)·최준명(崔俊明) 등과 함께 대구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2차례에 걸쳐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당시 박상진이 만주에서 반입한 권총 10자루 중 일부를 김재열(金在烈)과 최준명이 보관하고 있었다. 박상진은 1915년 4월 무렵 최준명으로 하여금 서창규(徐昌圭)를 만나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요청토록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다시 6월 무렵 최병규·김재열 등으로 하여금 권총을 소지하고 서창규를 만나 군자금을 요청토록 하였으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뒤인 1915년 11월 김진만·김진우·최병규 등과 함께 대구의 부호 정재학(鄭在學)·이장우(李章雨)·서우순 등에게 각각 5만 원, 2만 원, 3만 원을 독립자금으로 내줄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러나 대구의 부호들은 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마침 김진만의 장인 서우순이 현금을 숨겨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16년 8월 동료들과 함께 서우순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해 9월 4일 서우순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방문에 놀란 서우순의 비명소리에 집사가 달려오자 일행은 총을 쏘면서 달아났다. 이른바 대구권총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심을 거쳐 1917년 6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고 7년간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미군정 경상북도 상임고문, 1946년 민주통일당(民主統一黨) 발기인 대표,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경상북도 조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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