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源
會源1886. 6. 8 ~ 1960. 7.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풍산소작인회
- · 조선공산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5) 1886년 6월 8일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풍산읍(豊山邑) 안교리(安郊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성도(李聖道)·이달팔(李達八)이다.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이 농민운동을 하며 농민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 안동시 풍산읍 일대에서 조직된 풍산소작인회(豊山小作人會)에 1924년부터 참가하였다. 당시 소작인들은 과도한 소작료와 일본인 지주들의 횡포로 삼중고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3년 11월 결성된 풍산소작인회는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농민운동단체였으며, 농민들의 처우 개선과 청년운동을 선도하는 데 기여하였다. 소작인회에는 소작인뿐만 아니라 선진적인 자작농과 지주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결성 당시 200여 명이었던 회원이 1년 만인 1924년에는 5,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에 따라 풍산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인 와룡·구담·괴정 등지에 출장소를 두기도 하였다. 풍산소작인회에 가입하여 소작료 인하를 위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소작권을 빌미로 횡포를 부리는 일본인 지주들에게 항거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5년 2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업무방해죄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1927년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가입하였다. 조선공산당에서는 각 지방의 공산주의자를 동원하여 노동자와 농민을 경제적으로 조직, 무산계급적 교양훈련을 실시하여 체제변혁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였다. 이러한 조선공산당의 당원으로서 풍산소작인조합(豊山小作人組合) 집행위원으로 임명되어 농민의 권익을 옹호하고 일제의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당에서 경상북도 야체이카를 수립하였을 때 풍산 지역의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또한 신간회(新幹會) 안동지회에 참여하였으며, 1928년 대표위원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이른바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11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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