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泰魯
泰魯1899. 11. 1 ~ 1932. 9.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전북청년연맹
- · 고려공산청년회
- · 신간회 군산지회
- · 군산노동연맹
- · 옥구청년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899년 11월 1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현 군산시) 개정면(開井面) 운회리(雲會里)에서 태어났다. 지역의 사회단체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10월부터 전북청년연맹(全北靑年聯盟)에서 활동하였다. 1926년 4월 17일 이리(裡里)청년회관에서 개최된 집행위원회에 참가하여 전북청년연맹 소집 규정 등을 개정하는 작업에 참여하였다. 1927년 2월 일본 제국주의의 타파와 사유재산제도 타파를 목적으로 하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였다. 김준철(金俊喆)과 함께 김행규(金杏奎)를 책임자로 하는 옥구야체이카를 조직하였다. 3월부터 5월까지 미룡리(米龍里) 소재 무명산(無名山)에서 야체이카 모임을 2회 개최하여 한국의 독립 방략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그해 11월 10일 옥구지역 청년단체를 통합시켜 독립운동의 역량을 결집하고자 4개 청년단체와 대표자 15명을 모아 옥구청년동맹(沃溝靑年同盟)을 결성하기로 결의하였다. 여기서 김행규와 함께 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옥구청년동맹 결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7년 6월 12일에 조직된 신간회(新幹會) 군산지회(群山支會)에서 활동하였다. 1928년 2월 7일 제2회 정기대회에서 간사로 선정되어 순회 강연회, 노동야학 등에 참여하였다. 이는 군산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던 노동·농민운동을 독립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함에 있었다. 3월경부터는 군산노동연맹(群山勞動聯盟)에서 서무 및 재정부 담당자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군산노동연맹 상무위원(常務委員)으로 활동하던 중, 군산사회단체 대표로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옥구농민조합 사건 공판에 참석하였다. 군산 일대에서 노동자와 농민들을 대상으로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던 중,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 관련자로 지목되어 군산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1년 8월 9일 풀려났으나,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1932년 9월 28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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