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根
昌根미상 ~ 1919. 6
관련 단체
- · 천마산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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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와 출신지에 대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1919년 천마산대(天摩山隊)의 일원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가 희생되었다. 천마산대는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豊)·박응백(朴應伯)·최천주(崔天柱)·심용준(沈龍俊)·김세진(金世鎭)·양봉제(梁鳳濟)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천마산대가 조직된 시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독립신문』에 따르면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조직되었고, 1919년 천마산대의 활약을 보고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만세운동 이후부터 실제적인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천마산대는 약 5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근거지가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에 있는 천마산에 있었기 때문에 천마별영(天摩別營)·철마별영(鐵馬別營)이라고도 불렸다. 설립목적은 군자금 모집, 항일독립운동을 위한 민중공작, 일본관리 및 친일세력 암살이었다. 1923년 발간된 『독립신문』에는 천마산에 근거를 둔 천마산대는 설립된 이래 5년간 가장 맹렬한 모험행동을 취하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고, 그 명성이 쟁쟁하다고 보도하였다. 1919년 6월 일본군 수백여 명이 삭주군 두룡산(頭龍山)에 주둔하고 있던 천마산대를 기습하였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일본군의 습격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이 습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격렬하게 총격전이 벌여, 일본군 3명을 처단하였다. 하지만 일본군의 강력한 화력으로 전세가 천마산대에 불리하게 전개되자, 천마산으로 후퇴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결국 이 과정에서 천마산대 대원 3명이 일본군에게 포로로 붙잡혔고, 이때 허기호(許基浩)·독고무(獨孤武)·유태순(柳泰純)·오원문(吳元文)과 함께 일본군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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