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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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한국광복군 제3지대
- · 한국독립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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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강원도 출신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신상과 관련된 정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당원으로 있다가 1941년 한국광복군에 참여하였다. 1940년 5월 충칭(重慶)에서 한국독립당·한국국민당·조선혁명당이 합동해 통합 한국독립당이 결성되었을 때, 당원으로 가입하는 등 우익 진영의 인사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1942년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경위대원(警衛隊員)에 임명되어 송복덕(宋福德)·박수복(朴守福)·문덕홍(文德洪)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당시 경위대 대장은 김관오(金冠五)였고, 대부(隊副)는 유병무(劉炳茂)였다. 1943년 4월까지 경위대원으로 활동하다가 그해 하반기에는 당시 징모 제6분처였던 광복군 제3지대원으로서 푸양(阜陽)과 쉬저우(徐州) 지역에 파견되어 1944년 5월까지 초모공작 및 대적 선전임무를 수행하였다. 김학규(金學奎)를 주임으로 푸양에 거점을 둔 징모 제6분처에 소속되었다. 징모 제6분처는 초기에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나, 1943년부터 초모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결과 큰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신송식(申松植)·김국주(金國柱) 등과 함께 쉬저우 지구 중국군 유격부대에 밀파되어 한인 청년과 일본군에 강제로 징집되어간 한인 사병에 대해서 초모공작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1944년에는 장준하(張俊河)·김준엽(金俊燁)·노능서(魯能瑞) 등 30여 명이 쉬저우 지구의 일본군 병영을 탈출하여 광복군에 입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징모 제6분처는 3년여 동안 거의 160여 명 정도의 인원을 초모 확보하였다. 군무부에서 1945년 3월 말 현재 초모공작에 의해 획득된 인원을 339명으로 보고한 것으로 보면, 160여 명을 초모한 징모 제6분처가 광복군 전체에서 획득한 인원의 약 절반을 초모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광복군에서는 징모 제6분처를 지대로 개편하고자 하였고, 1945년 3월 광복군 제3지대로 편제되었다. 1945년 광복군 총사령부에 전보되어 복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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