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烈
鍾烈1924. 11. 29 ~ 2019. 10.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1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4년 11월 29일 경상북도 예천군(禮泉郡) 풍양면(豐壤面) 와룡동(臥龍洞)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후 부대를 탈출하여 한국광복군 제1지대 소속으로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고향에서 생업인 농사에 종사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 전황이 수세에 몰린 일제의 강요로 1943년 청년특별훈련소(靑年特別訓鍊所)에 징집되어 일본어 교육 및 군사훈련을 받았다. 일제가 1944년부터 1923년 12월 1일 이후 출생한 한국인 남성을 일괄 징집하자 1944년 8월 강제 징집되어 평양(平壤)의 일본군 제42보병부대에 배속되었다. 이후 신의주(新義州)를 거쳐 중국으로 차출되었다. 난징(南京)을 거쳐 한커우(漢口) 소재 일본군 부대에서 3개월간 군사훈련을 받았다. 평양에 머무르던 시절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한국인 상등병을 통해 중국에 한국 독립운동 조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본군으로 무의미하게 죽는 것보다 탈출하여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부대 내 한국인들을 규합하여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탈출 계획을 수립한 뒤 1945년 1월 후난성(湖南省)에서 동료 8명과 함께 부대를 탈출하였다. 탈출 경로에 있던 중국인 마을을 통해 국민혁명군 측에 투항하였다. 이후 후베이성(湖北省) 신디안젠(新店鎭) 일대에서 중국 국민혁명군 제9전구 유격대 소속으로 항일 전투 및 정보 수집 활동, 일본군 포로 심문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5년 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국국민당의 합의에 따라 중국군 내 한인들이 광복군으로 전속하게 되면서 유영중(柳英中)·전재덕(全在德)의 인솔 하에 후난성 구이동(桂東)에 집결하였다. 중국군 제9전구 내 한인들이 증가하자, 광복군 공작대에서는 이들을 별도 광복군 구대로 편성하고자 하였다. 이 구이동 집결부대가 후속 부대와 합류하여 광복군 제1지대의 제3구대로 편성될 때, 제3구대 대원으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전선에서 초모 활동 및 정보 수집, 일본군 후방 기습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과 함께 전선의 일본군 무장해제 작업 및 관할 내 치안 유지 임무를 담당하였다. 1946년 6월 한커우와 난징, 상하이(上海)를 거쳐 이범석(李範奭) 등 한국광복군 장교단과 함께 배편으로 인천항에 도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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