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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能贊

崔能贊

1901. 6. 8 ~ 1932.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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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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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강서(江西)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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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1901년 6월 8일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반석면(班石面) 상사리(上四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평안남도 강서군 모락장 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4일 강서군 반석면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당일 오전 10시 원장리(院場里) 합성학교 운동장에서 1,000여 명이 모여 독립선포식을 거행하였다. 원장교회 차병규(車炳奎) 장로의 기도로 시작하여 지석용(池錫湧) 장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어 임이걸(林利杰)이 독립선포식을 가져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40분간 연설하였다. 그리고 평화적 시위임을 선언하고 대형 태극기를 높이 들어 앞세우고 나팔수를 선두로 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원장 시장을 향해 행진하였다. 원장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합성학교 교정으로 돌아올 때는 군중이 뒤따랐다. 이후 시위대는 모락장 장터로 이동하였다. 시위대가 모락장 장터에 가까워지자 일제 헌병대가 발포하여 시위대 중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격분한 시위 군중은 돌을 던지고 맨주먹으로 저항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으며, 일제 헌병대를 붙잡아 처단하고 헌병주재소를 불태웠다. 이때 동생 최능현(崔能賢)과 함께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이 일로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1심과 2심을 거쳐 1919년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등으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9년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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