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
鄭敏英1899. 10. 2 ~ 1932. 9.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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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9) 1899년 10월 2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본적은 경북 대구(大邱) 신정(新町)이다. 1919년 3월 당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嘉會洞) 거주하면서 서울 중앙학교 4학년 재학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자 민족대표의 한 사람인 손병희(孫秉熙) 등이 주장하는 독립의 취지에 깊은 감명을 받고 이를 직접 행동으로 옮겼다. 3월 7일 서울 중앙학교 후배인 2학년 학생 최중경(崔中庚)에게 독립선언 관련 인쇄물 다량을 건네받아 이를 서울 시내에 배포하였다. 그 후 고향 사람인 김준희(金俊禧)에게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가 작성한 독립선언서,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학교를 비교하여 일본은 한국 학생에 대하여 압제적이다”라는 내용인 「우리 동포여」라는 제목의 격문, 상인들도 한국독립운동에 가담하라는 내용의 「경고문」 등을 넘겨받아 서울 곳곳에 배포하는 활동을 담당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잡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1919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 7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그해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한 뒤 1926년경부터 부산진철공소(釜山津鐵工所)에 근무하였으며, 체신(遞信) 이원(吏員)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옥살이 후유증으로 1932년 9월 1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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