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永福
永福1874. 7. 13 ~ 1935. 8.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관련 사건
- · 1919년 연기군 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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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8) 1874년 7월 13일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남면(南面) 월산리(月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임양일(林良日)이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31일 연기군 남면 양화리(陽化里)·진의리(眞儀里)·월산리(月山里)의 연합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연기군에서는 1919년 3월 23일 군내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1차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된 후,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제2차 횃불만세시위가 연기군의 각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남면에서는 3월 31일부터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양화리·진의리·월산리에서는 처음부터 연합으로 횃불만세운동이 준비되었다. 3월 31일 양화리의 조의순(趙義淳)·임덕문(林德文), 진의리의 김봉식(金鳳植)과 함께 월산리의 대표로 연합 횃불만세시위를 계획하는 회의에 참여하였다. 양화리에 소재한 이덕민(李德敏)의 집에서 회합하여 당일 밤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구체적으로 주민들을 지휘하여 아월산(雅月山)에 올라가 횃불을 밝혀 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남면의 각 지역을 순회하며 연합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결정하고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이날 밤 이덕민·조의순·김봉식·임덕문 등과 함께 양화리의 임덕화(林德化)를 추동하여 마을 주민 100여 명과 함께 아월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시위대를 지휘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진의리로 이동하였다. 진의리에서 주민들에게 신망이 있던 임영철(林營喆)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독려하여 진의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확대된 시위대를 지휘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송담리(松潭里)로 행진하였다. 송담리는 연합횃불시위 계획에 참여하지 않은 지역이었으나 이미 주민들이 독자적으로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합류하였다. 남면 일대로 출동한 일제 경찰의 횃불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조사, 색출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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