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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炯器

炯器

1884. 7. 8 ~ 1936.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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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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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南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남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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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남원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4년 7월 8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사매면(巳梅面) 대신리(大新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당시에는 고향 마을 대신리의 구장(區長)을 지내고 있었다. 1919년 4월 4일 남원군 읍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남원읍 장터에서의 이날 시위는 그 전날인 1919년 4월 3일에 사매면과 덕과면(德果面)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의 연장으로 일어났다. 사매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덕과면 면장(面長) 이석기(李奭器)와 면서기(面書記) 조동선(趙東先) 등이 일제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다. 그러자 사매면 일대의 마을 주민들은 이들이 남원읍 내 헌병분대(憲兵分隊)로 호송될 예정인 것을 전해 듣고 붙잡힌 이들을 구출하고 조선 민족의 독립 의지를 더욱 강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만세시위를 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때 이석기의 6촌 동생으로 이용기(李龍器)와 이성기(李成器) 등과 함께 ‘대한독립기(大韓獨立旗) 사매면(巳梅面)’이라고 적힌 큰 깃발을 직접 만들어, 남원 읍내의 장날이었던 4월 4일에 형제들과 함께 이를 앞세우고 장터로 나아갔다. 이때 같은 마을 사람들인 유창근(柳昌根)·김해근(金海根)·형갑수(邢甲洙) 등도 함께 합류하였다. 이들은 그곳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남문(南門)을 거쳐 당시 헌병분대 청사로 사용되고 있던 광한루(廣寒樓)로 행진해 나갔다. 그러나 이때 출동한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고자 무차별 발포(發砲)를 가하면서 그 자리에서 방극용(房極鏞)·방진형(房鎭馨) 등이 사망하는 등 참혹한 피해가 이어지면서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고, 이때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리하여 1919년 5월 9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오히려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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