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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海日

海日

1892. 2. 11 ~ 1959.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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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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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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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덕 창수면(3.19)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2월 11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한자를 달리하는 이해일(李海逸)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할 당시 나이는 27세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영덕군 창수면에서 벌어졌던 창수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창수면 독립만세운동은 전날인 3월 18일 영덕 각지에서 모인 약 2,000명이 참여한 영해면(寧海面) 성내시장 독립만세운동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영해면을 비롯하여 영덕군 내 각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창수면의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현우(李鉉祐)·권재형(權在衡) 등이 3월 19일 사람들을 모아 영해면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그러다 도중에 이미 영해면 시위에 참여하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하였다. 이수각 등은 오히려 창수면 내에서 독자적으로 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이에 찬동하는 인원을 규합하였다. 이때 창수면에서도 시위대가 조직되어 창수동에 있는 주재소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그러던 중 마을 구장으로부터 시위 참여 권유를 받아 이에 찬성하였다. 곧바로 곧 시위대에 합류하여 길을 나서게 되었다. 오후 4시 경 창수면 창수동에 있는 주재소에 시위대가 다다랐을 때 이미 시위대의 규모가 200명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이들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는데 앞장섰다. 또한 이수각·이현설·권재형·이현우 등의 지휘를 받아 주재소로 침입하여 여러 기물을 파손하는 한편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당시 창수주재소에는 영해면 등지의 시위 정보를 미리 감지한 경찰들이 시위대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으나, 대규모 군중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였다. 주재소를 공격한 시위대는 경찰의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격렬하게 공격하였다. 주재소 건물 및 숙사 벽, 천장, 기타 건물을 파괴하고 공문서를 훼손하였으며 의자 10각 외 잡품 약 4종을 부셨다. 이어 주재소에 있던 순사들 소유의 도서 및 기타 물품도 파손하고, 오후 7시 경 자진 해산하였다. 이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귀가하였다가 이후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건조물 손괴, 가택 침입, 공문서 훼기, 각 기물 손괴 및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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