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亢淳
亢淳1887. 12. 2 ~ 1940. 1.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금마면(金馬面) 홍성시장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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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87년 12월 2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巖里)에서 출생했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금마면에서는 서당의 훈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민영갑은 1919년 3월 1일 이래 서울부터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논의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민영갑 등은 가산리(佳山里) 소재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된 4월 1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했다. 4월 1일 예정대로 연극이 공연되었다. 민영갑 등은 임시 연극 공연장에 관객으로 입장하여 아직 연극 공연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 경 객석에서 일어나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공감한 20~30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호응하며 동참하였다. 직후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만세시위는 강제 해산되었다. 만세시위 참여자 중 체포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4월 4일에는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 시위가 일어났다. 금마면을 제외한 나머지 3개면은 홍동면(洪東面)·홍주면(洪州面)·홍북면(洪北面)으로 파악된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사 5명을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할 수 없다. 4월 초 금마면에서 만세시위가 집중적으로 일어나자,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작전이 전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적극 참가자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모진 신문을 받은 후, 1919년 4월 19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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