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河京
河京186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1919년 양덕군 양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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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평안남도 양덕군(陽德郡) 구룡면(九龍面) 봉계리(鳳溪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나이가 52세이므로 1868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5일 양덕군 양덕면(陽德面)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양덕면 만세시위는 양덕군 온천면(溫泉面) 상청리(上淸里)에 거주하던 천도교 양덕군 금융조합원 이영화(李永華)의 주도로 계획되었다. 2월 하순 이영화는 서울에서 열리는 천도교 대교구장회의(大敎區長會議)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만세운동에 대한 소식을 접하였고, 이후 성천군 천도교구의 김원준(金元俊)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8장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군내 여러 지역의 천도교 인사들과 함께 읍내에서 장이 열리는 3월 4일 오전 11시에 독립선언식을 개최하기로 결의하고, 각 면에서 천도교인과 마을 주민들을 조직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주도하던 이영하 등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고, 3월 4일 예정되었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 계획은 연기되었다. 3월 5일 오전 9시경 전날 체포되지 않은 천도교인들과 더불어 양덕면 읍내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양덕면 상석리(上石里)에 위치한 양덕헌병분견소로 이동해 만세시위를 전개하면서 가지고 있던 다양한 무기들을 활용해 분견소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실탄 사격을 가해 부상자들이 속출하였다. 이로 인해 사상자 20여 명과 부상자 50여 명이 발생하였고, 70여 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일자미상에서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6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독립만세를 부른 것은 민족으로서 의무이고 천리에 합당한 일로 사람의 정도가 아니겠는가”라며 상고하였지만, 그해 8월 28일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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