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학성
吉學晟1868. 11. 2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박천면 3.1운동
- · 영변군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1868년 11월 20일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 팔원면(八院面) 석성리(石城里)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는 영변군 영변면 동부리(東部里)에 거주하면서 영변천도교구장(寧邊天道敎區長)을 맡고 있었다. 1919년 2월 25일 평양의 천도교 도사(道師)인 오영창(吳永昌)으로부터 급히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고 28일 천도교 중앙총부에 찾아갔다가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3월 1일 지방에서 올라온 도사 및 지역교구장, 전교사(傳敎師) 등 20여 명과 함께 탑골공원에서 거행될 독립선언식을 기다리던 중 태화관으로 오라는 기별을 받고 태화관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고서 다시 종로통으로 나왔다. 이때 다수의 학생이 주축이 된 시위대가 지나가자, 이에 뛰어들어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3월 2일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천도교구장 이정석(李鼎錫)과 평북 철산군(鐵山郡) 천도교구장 최영곤(崔永坤), 평남 진남포(鎭南浦) 천도교구장 김광한(金光翰)과 함께 천도교 중앙총부의 대도주인 박인호에게서 향리로 돌아가서 만세 시위를 준비하고 차후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 모든 교인은 시위에 참가하여 독립 만세를 고창하라는 지시받았다. 3월 3일 밤 서울에서 출발하여 박천군(博川郡) 박천면(博川面)과 영변군 봉산면(鳳山面)을 거쳐 6일 자택으로 돌아왔다. 귀향 도중 3월 4일 박천면의 조경순(趙京淳) 집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박천군 천도교구장인 이흥룡(李興龍) 및 교인 2명과 회합하였다. 5일에는 영변군 봉산면 조양동(朝陽洞) 이기승(李基承)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는 동안 천도교인 10여 명과도 회합하고 대도주의 지시 사항을 전달하였다. 귀향 직후인 6일 자택 근처의 천도교인 최윤진(崔允進) 외 1명과도 회합하였고, 8일 영변면(寧邊面) 용포동(龍浦洞) 김형성(金瀅垶)의 집에서 8명의 교도를 만나 대도주의 지시 사항을 전달하였다. 그 내용은 중앙총부의 다음 통지를 받을 때 “천도교구실에서 각 면의 전교사에게 통지하고, 전교사는 각 신도에게 통지하여 각 교도들이 교구실에 모여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도록 할 것”과 “비록 죽더라도 대도주의 명령을 준수할 것” 등이었다. 3월 8일경까지 귀향이 확인되지 않자 의혹의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던 경찰은 영변천도교구실에서 184장의 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하였다. 3월 4일 귀향 과정에서부터 천도교인과 접촉하며 비밀리에 만세 시위를 준비하던 중 3월 11일 영변면 용포동 김형성의 집에 은신하다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여 1919년 5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이에 불복하여 또다시 상고하였으나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된 후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20년 4월 28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