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柱勤
柱勤1898. 6. 2 ~ 1966. 12.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통영군 이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8년 6월 2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이운면(二運面) 아양리(鵝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이운면 아주리(鵞洲里, 현 거제시 아주동) 시장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4월에는 통영군 거제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서울의 국장(國葬)에 참여한 후 통영으로 돌아와 다른 지역과 같이 만세시위를 벌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4월 1일 윤택근(尹澤根)으로부터 만세시위를 전개하자는 권유를 받고 찬동한 후, 바로 이인수(李麟洙)를 방문해 윤택근의 뜻을 전하며 함께 동참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인수는 아양리 서당에서 이공수(李恭洙)와 함께 ‘대한제국 독립만세’라는 문구를 양지 10여 장에 쓴 후 보관하였다. 4월 2일 윤택근·이인수 등과 함께 아주리 시장에 있는 이선이(李仙伊) 집에 모여 다음날인 4월 3일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날 밤 이인수는 이중수(李仲洙)와 함께 전날 제작한 종이를 시장 곳곳에 붙이고, 인근 도로에도 살포하였다. 4월 3일 저녁 7시 반경 윤택근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종이 깃발을 가지고 아주리 시장으로 갔다. 시장에는 이미 이운면과 연초면(煙草面)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때 윤택근·이인수 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라 쓴 종이깃발을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만세를 따라 불렀고, 이후 시위대와 함께 시장 곳곳을 행진하였다. 일제 군경이 출동해 시위대를 진압하고, 주도한 인사들을 검거하였다. 이때 윤택근·이인수 등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1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8월을 받았다.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그해 12월 12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 이운청년회·거제청년연맹·거제신흥청년회 등의 단체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잡지 『개벽(開闢)』의 분사(分社)를 경영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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