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란
張聖蘭188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1919년 의주군 수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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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8)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수진면(水鎭面) 이화동(梨花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나이가 33세이므로 1887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이명은 장석란(張碩蘭)이다. 1919년 4월 1일 의주군 수진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의주군은 1919년 3월 1일 12시에 만세운동을 시작한 전국의 7개 도시 중 하나로,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된 유여대(劉如大) 목사가 직접 만세시위를 지도하였다. 이후 기독교계와 천도교계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거행한 의주군은 전국에서 격렬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의주군 수진면의 만세시위는 의주 읍내의 격렬한 만세운동으로부터 자극받아 전개되었다. 의주에서는 3월 1일 이래 날마다 만세시위가 계속되었고, 일제 헌병들은 총검과 쇠갈고리를 사용하며 폭압적으로 시위를 진압하였다. 이와 같이 격렬하게 진행된 의주군의 만세시위는 3월 4일 양실학교 학생 600여 명의 만세시위 이후 소강상태였다. 그러다가 3월 27일 읍내 장날을 이용해 천도교인과 장꾼 등 3,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한 것을 시작으로 4월 초까지 다시 격렬하게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4월 1일에서 2일까지 거행된 수진면의 만세시위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개되었다. 수진면에서는 김두만(金斗萬)이 주도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김두만은 표득복(表得福)·백낙현(白樂賢)·차천모(車天模)·백원억(白元億) 등과 함께 먼저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논의를 통해 4월 1일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동지 확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백원억은 표득복·백낙현으로부터 “현금의 만세사건에 대해 본동(本洞)에서도 참가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이를 일일이 통지하라”는 지시를 받고, 일제의 통치에 비판적이면서 한국 독립의 희망을 가지고 있던 지역의 인사들에게 거사 계획을 알렸다. 이때 백원억으로부터 만세시위의 취지와 계획을 듣고, 장봉현(張奉賢)·장기덕(張基德)·김응호(金應浩) 등과 함께 거사 계획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아침 김두만·백낙현·장봉현 등과 함께 수진면사무소로 향하였다. 6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김두만의 사회로 누구나 연단에 나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독립연설회가 개최되었다. 송영보(宋永甫)·김용근(金龍根)·김이원(金利源)·최세화(崔世和)·김상려(金相礪) 등이 차례로 연단으로 올라가 일제의 통치를 규탄하고, 독립을 희망하는 격렬한 의견을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연설회를 마치고 김두만·표득복·백낙현·차천모 등과 함께 6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행진하였다. 그리고 백낙현·차천모·장봉현 등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해 주계주(朱桂柱)의 집과 도축장 등을 공격하였다. 운천동 동장(洞長)인 주계주는 수구진헌병주재소 헌병 보조원과 사적 친분을 맺고, 그 위세를 빌려 주민들에게 악행을 자행한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4월 2일에는 전날 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수진면사무소 앞에 모였고, 시위대는 2,000여 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날도 김두만·표득복·백낙현 등과 함께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연설회를 개최한 후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처럼 수진면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지속되자, 일제는 의주에서 지원 병력을 파견하였다. 수진면으로 출동한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해, 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 주도자로 지목되어 백원억·장봉현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일자미상일에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방화, 살인미수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며 “하늘이 내린 민족자결은 강대국의 자비안(慈悲眼)으로써 속방의 소생수(蘇鼪壽)이다. 한국인도 4,000년의 역사를 가진 의리 있는 민족으로서 초동야인(樵童野人)이 되고 폐가고혼(弊家孤魂)이 될지라도 원하는 것은 독립이므로 본인도 이 사상을 가지고 올해 4월 1일 동민과 회집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려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주계주의 집에서 불이 일어남을 보고 만세도 부르지 않고 어떠한 화재인가도 모른 채 귀가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 터에 어망으로 오리 잡듯이 관헌에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2년 6개월의 판결을 받았다. 만세도 호창하지 않았고, 또한 화재 경위도 모르는 자에게 형을 언도함은 불복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그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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