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林昌鉉

昌鉉

1863. 2. 16 ~ 1938. 2. 2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昌鉉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부천(富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부천군 계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63년 2월 16일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계양면(桂陽面) 선주지리(仙住地里, 현 인천광역시 계양1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임창현(林昶鉉)을 사용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4일 부천군 계양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서울과 주변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심혁성(沈赫誠)은 3월 24일 오후 2시경 장기리(場基里)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자 여기에 공감한 300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해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를 행진하였다. 오후 5시경 만세시위 발생 소식을 접수하고 장기리 시장으로 출동한 니노미야(二宮喜三次) 등 일제 경찰 4명은 심혁성을 만세시위의 주도자로 지목하고 붙잡아 주재소로 연행하려고 하였다. 이에 임성춘(林聖春)의 주도로 주민들이 일제 경찰들을 에워싸고 심혁성을 구출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이 휘두른 칼에 이은선(李殷先)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다남리(多男里)의 이담(李潭)은 친척인 이은선의 사망 소식을 듣고 분노해, 같은 날 밤 일제 경찰에게 항의하기 위해 주민들을 규합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계양면장 안병혁(安炳赫)과 면서기 이경응(李敬應)의 도움을 받아 “죽은 사람에게 동정하는 자는 오늘 밤 12시에 계양면사무소로 집합하라”는 내용의 통문을 작성해 각 마을에 돌렸다. 이 통문의 내용을 듣고 일제 경찰의 만행에 분노해, 그날 밤 12시 계양면사무소로 갔다. 면사무소 앞에는 2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이때 이담은 통문 작성에 도움을 준 이경응이 보이지 않자 “이경응은 자신이 범한 죄가 있어서 여기에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그의 집을 부숴 버리자”라고 말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선주지리로 이동하였다. 이담의 지휘에 따라 최성옥(崔成玉)·전원순(全元順) 등 1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이경응의 집과 내부의 가재도구 대부분을 파괴하였다. 이어서 다시 면사무소 앞으로 와서 3월 25일 새벽까지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해산하였다. 이후 이경응의 집 습격과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일제 경찰의 조사·색출과정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9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면소 판결을 받을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