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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근

李恒根

188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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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이항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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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단천(端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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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자립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7)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피도면(波道面) 하서리(下西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6년 당시 나이가 29세이므로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1915년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비밀결사 자립단(自立團) 결성에 참여하였다. 자립단은 단천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국 광복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이들은 독립의 필요성을 공유하며 독립을 위해서는 상업 등을 통하여 재산을 증식하고, 자제들에게 그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을 시행하기로 계획하였다. 단체의 재정기금은 단원들의 갹출로 이뤄졌는데, 입단금(入團金) 1원과 월 회비 20전씩을 징수해 기금으로 적립하였다. 강명환(姜明煥)·이임배(李林培)·유창률(劉昌律)·이동섭(李東燮) 등 기독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동지들이 조직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단원들은 농민·상인·교사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되었다. 1915년 (음)9월 15일 강명환·유창률·이임배 등 6명과 함께 단천군 복귀면(福貴面) 용암리(龍岩里) 사부진(沙富津) 염수대(廉守臺) 산 위에서 첫 번째 회합을 가지려고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지되었다. 다시 그날 밤 단천군 파도면 외문리(外門里) 염(廉) 아무개 집에서 재회하여 회합이 성사되었다. 이날 밤 조국 광복을 목적으로 하는 맹약서(盟約書)와 「자립단규칙서(自立團規則書)」를 작성하고, 동지 규합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하였다. 이후 최태형(崔泰亨)·심항기(沈恒基)·김수현(金洙現)·전성익(全性翊)·김율봉(金栗鳳)·전주익(全周益)·최만종(崔萬宗)·설관학(薛寬學) 등 다수가 자립단에 가입하여 조직이 더욱 확대되었다. 같은 해 (음)11월 5일 단천군 수하면(水下面) 하농리(下農里) 장암촌(長岩村) 서당(書堂)에서 다시 자립단 동지들과 회합하고, 자립단의 맹약 가입과 임원 선정 등을 협의하였다. 이때 단장(團長) 방주익(方周翼), 부단장 전성익, 총무 박승혁(朴承赫), 조직 강명환, 재정 심항기, 서기 최태형(崔泰亨) 등을 각각 선임하였다. 자립단의 주도 세력은 대체로 20대 젊은 층이었으며, 30대도 약간 명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직업은 대부분 농업과 상업이었지만, 숙박업·사숙 교사 등도 있었다. 대체로 상업에 따른 이익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활동을 자립단 단원들과 함께 지속하다가 단천헌병대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6년 3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4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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