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定植
定植1886 ~ 1910. 6.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후기의병(유상돈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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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8)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심천면(深川面, 현 동림군) 고군영리(古軍營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부터 1909년까지 유상돈(劉尙燉) 의병부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6월 15일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열강에게 알리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고종이 특사를 파견하였지만, 이를 빌미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었다. 이어서 체결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행정권과 인사권이 박탈되었고, 협약 체결 이후 대한제국의 군대마저 해산되었다. 이처럼 국권상실의 위기가 점차 현실화 되는 상황 속에서 전국 각지에서는 의병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때 서북지역에서는 상당수의 산포수들이 대거 의병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직업적 특성상 산악지형과 총포의 사용에 익숙했기 때문에 의병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1908년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는 상당수의 의병들이 정면공격을 통한 속전속결 전략에서 산악지역을 근거지로 한 장기전 전략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이러한 전략을 유지하는 데 산포수들의 참여는 큰 자원이 되었다. 또한 수많은 평민들이 의병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중적인 성격이 강화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조세 불납을 촉구하는 전단을 각 지역에 게시하는 방식의 투쟁도 병행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서북지역에서 의병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의병에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유상돈의 휘하에서 이여숭(李汝崇)·차연욱(車連旭)·계석노(桂錫魯) 등과 함께 활약하였다. 이들과 함께 1908년 10월부터 1909년 3월 사이에 의주(義州)·철산(鐵山)·선천·용천(龍川) 등의 지역을 돌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일제 군경의 추격을 받아 결국 동료 의병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0년 4월 11일 평양공소원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교(絞)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옥고를 겪다가 그해 6월 13일 평양감옥 대흥부출장소(大興部出張所)에서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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